종편채널의 '갑질'과 무너지는 잡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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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등장한 잡지는 19세기 조선왕조 말기인 1892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올링 (Ohlinger) 부부가 인쇄한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The Korean Repository)라는 영어잡지이다. 유럽에서 잡지가 탄생한 시기로부터 200년이 지난 때였다.

우리말 잡지로는 1908년 11월 1일 육당 최남선 선생의 ‘소년’지가 최초로 우리나라 잡지의 효시이다. 그 다음이 1913년 10월에 창간된 ‘청춘’이다. 주목할 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 조국의 미래를 걱정한 지식인들이 민중을 대변하고 계몽하기 위해 주도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잡지 역시 암흑기를 맞았다. 종교단체에서 발행하는 잡지들이 아니면 몹시 힘든 시기였다. 또 사회주의가 지구촌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좌파경향의 잡지가 나타난 것도 일제 강점기였다. 또 청소년, 여성지가 규모를 키워간 것도 이 때다.

1930년대에 주목할 만한 여성지로는 동아일보사에서 창간한 ‘신가정’과 조선일보사의 ‘여성’으로 해방 전 여성지의 양대산맥이다. 신문사마다 일제의 일간지 탄압과 폐간조치를 피해 잡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1931년 11월 동아일보사의 ‘신동아’, 1935년 11월 조선일보사의 ‘조광’이 등장한 맥락이 이러하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도 계속되고, 신문조직의 한 부서로 잡지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큰 발전은 어려웠다. 더구나 출판할 용지마저 부족했다니 애국심 아니면 어려웠을 일이다. 어쨌거나 일간신문사가 월간지를 출판하는 전통이 이 때 시작되었다 하겠다.

해방과 전쟁 이후 한국 출판계는 ‘사상계’, ‘현대공론’, ‘여성계’, ‘여원’, ‘학원’, ‘현대문학’ 등 교양지들을 내놓았고, 1960년 4월에 창간된 ‘주부생활’은 우리나라 잡지의 전환점이 된다. 국판(A5판)에서 4X6배판(B5판)으로 잡지가 훌쩍 커지고 화려해진 게 이 때부터이다. 이후로 신문사들이 저마다 잡지를 복간, 창간하며 잡지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1975년에 이르러 우리나라 정기 간행물의 수가 1,000여 종을 넘어선다.

◈ 잡지, 민족을 깨우다!

지난 8월 30일 한국잡지학회가 출범했다. 과거 잡지는 TV, 신문, 라디오와 함께 4대 매체에 속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는 다양한 방송채널, 인터넷,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며 침체를 겪고 있다. 학계에서는 잡지에 대해 연구도 별로 안한다는 탄식이 등장한다.

현재 국내 시사 종합지의 발행부수는 최대가 5만부 수준이다. 주요 언론사 발행 잡지도 대체로 2~3만부 수준이니 이걸로는 생존이 어렵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평균 100만부, 프랑스 시사 주간지인 ‘누벨 옵세르바퇴르’ 등과 일간지 ‘르몽드’ 등은 30만부 안팎이라고 한다.

왜 잡지로부터 독자들이 떠나는 것일까? 우선 잡지가 아니라도 워낙 많은 매체들이 각종 정보와 뒷이야기를 전하니 여성지, 패션지의 위상이 예전 같을 수 없다. 시사월간지는 역시 정치와 재벌의 뒷이야기가 잘 먹히는 매체이다.

그런데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며 권력의 내부도 어느 정도는 투명해져 재벌가 비화, 쿠데타의 내막, 권력과 재벌의 담합 등 이야기 거리들이 많이 약해졌다. 거기에다 신문과 인터넷이 잡지가 다룰 이야기들을 남겨 놓지 않고 샅샅이 훑어 다루는 것도 잡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인구 구조상으로는 40,50,60대가 잡지를 읽는 주독자층인데 30대, 40대는 이미 인터넷 세대로 자랐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잡지세대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잡지는 변방의 매체로 밀려나고 있다.

잡지는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이런 정도가 되어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며 가르치는 기준이 있다.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4. 그 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

잡지는 이런 대우를 받았고 아직도 사회적 교양의 깊이를 더하는 데 필요한 매체이다.

◈ 시사잡지 한 권쯤은 읽어야 중산층

최근 잡지를 결정적으로 힘들게 하는 요인은 종편채널이다. 무리 없이 내놓을 적정량의 종편채널 허가는 1곳이었지만 4개나 되는 종편채널의 등장으로 광고시장이 뒤흔들렸다. 광고 유치에 타격을 입은 곳은 잡지와 무가지였다. 광고주 기업들이 광고물량을 줄이거나 옮기면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곳을 깎아내기 때문이다.

조중동 일간지광고는 조중동 종편으로 빠져나가고, 구멍 난 조중동 일간지 광고는 잡지 광고에서 빼다가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고 쏠림 현상이 가속되면서 잡지들은 고사하고 있다. 획일적인 보수대형 종편 4개가 허가되면서 작고, 개성 있고, 전문성 있는 출판매체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잡지사들은 작년 대비 광고 목표액을 10~20% 낮게 잡고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역부족이다. 그나마 가장 낫다는 패션지도 광고 수주액이 작년 대비 30~40% 급감하며 흔들리고 있다.

조중동 앞에만 서면 약해지는 방통위

종편 4개 채널은 엄청난 특혜로 탄생했다. 의무재전송, 황금채널 배정, 중간광고 등 여러 측면에서 과도한 정책적 시혜가 주어졌다는 건 방송학자들의 공통된 비판이다. 허가 때 기준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마구 내줬다면 이후 평가와 조치라도 엄정해야 한다. 못나고 못되게 굴면 퇴출시키는 기준과 정책추진이 필요하다.

종편사업자들마저 투자계획도 미비하고 공익활동 약속도 못 지키는 이유가 뭐냐 물으면 종편을 4개씩이나 허가해 줘 여력이 없다고 답한다. 그러면 줄이는 게 답이다. 그런데도 방송통신위원장께서는 종편이 이제 초기니까 잘 보살피고, 튼튼히 뿌리를 내리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종편 뿌리 챙기다 이 나라 출판계가 뒤엎어지는 건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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