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압부대원 트라우마, 63대대만 100명 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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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다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입니다. 개인적 문제로 처음 왔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야죠" 6일 11공수여단 63대대 대대장이었던 이모(72) 중령이 전우 열댓명과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 28묘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28묘역에는 5.18 진압작전에 투입됐다가 숨진 군인 23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63대대 출신 부대원들은 5.18 때 전사한 옛 전우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안으며 위로했다.

이들이 그간에 모임을 해왔지만, 동료들이 묻혀 있는 5.18 전사 군인 묘지를 찾은 것은 31년 만이다. 3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을 찾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쓰라렸던 과거와 마주하기가 힘겨웠던 것일까. 이 중령은 5.18 투입 직전 대대장으로, 2년 동안 같이 했던 부하들이 세상을 뜨거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에 가슴 아파했다.

"가고 싶어 간 것도 아니고 상부 명령에 의해 따랐을 뿐이다.부하들은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이렇게 누워 있는데 어디 가서 하소연할 건가. 그 유가족들의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또 살아남은 부하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정신적 고통과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63대대 부대원들과 함께 묘역 한켠으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나누는데, 이들은 취재 의도가 뭐냐며 한참 동안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5.18에 투입된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어느 정고 겪고 있는지 알고 싶어 왔다고 하자, 주변에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한 이가 너댓명 되고 술로 달래는 이가 많다고만 할 뿐 자신의 경험을 꺼낸 이는 없었다. 1시간 남짓 흘렀을까,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임모씨가 갑자기 말문을 열더니 속사포처럼 고통스런 과거를 쏟아냈다.

33년 전 임씨는 63대대 군인들과 함께 광주작전에 투입됐다가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 충격으로 30여년 동안 병명도 모른 채 머리 수술이며 온갖 병치레를 하다 두세 달 전에야 ''공황 장애''진단을 받았다. 공황 장애라는 병명을 정확히 알고 나서 처방약을 먹자 안정을 찾았다.

임씨는 당시 공포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 당시가 다 충격이죠. 시위대가 버스로 밀고 들어오고 불덩어리가 시커멓게 들어오는데 그걸 막고 서있자니 참. 전남 도청 앞에서 시위대들이 탈취해가지고 몰고 들어온 장갑차에 동료 2명이 깔려 죽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목격했어요. 그 고통,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겠어요." "또 차에서 뛰어내리자 마자 유탄을 맞았는데 병원에 마취제가 없어, 5명이 나를 붙잡고 엉덩이에서 유탄을 파내고 꿰맸다. 1주일 뒤에 곪아 터져 고름이 발 뒤꿈치까지 흘러내렸다. 만약 잘못되면 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살이 자라나왔다. 몸의 상처는 후유증이 없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 임씨의 정신적 고통은 33년 세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머리 수술을 다섯번이나 했다"며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니까 가족들에게 화도 많이 내고, 혈관에 문제가 생겨 머리 수술을 했지만 병원에서는 스트레스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간도 안좋고,하지만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단전호흡과 헬스 등산, 침뜸 등을 해봐도 치유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힐링캠프를 보다가 ''공황 장애'' 증세가 자신의 증세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가다 숨도 못 쉬고 해서 신경정신과를 가봤더니 병명이 공황 장애로 나왔다. 지금 신경정신과 약을 먹은지 2-3달 되었는데 위도 편안하고 마음도 안정되었다."

"5.18에 투입된 63대대 제대 장병 350명 중 아무리 못받아도 150명에서 100명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임씨에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를 받아야 할 부대원이 얼마나 될까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내가 전체적으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술로 달래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술로 달래다 심장이나 간이 안좋아서 눈이 멀어 죽은 동료도 있고, 그 당시에 자살로 죽은 사람도 너댓명 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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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공수여단이 있었던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부대에서 마을 처녀와 진중 결혼을 했던 이모 중사가 5.18 작전에 투입돼 전사하자, 이 중사의 부인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1년 뒤에 자살했다. 이 중사 부부는 함께 안장되었다. 유복자 딸은 부모도 없이 자라 올해 34살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숨기기 때문에 주변에 노출되지 않는다. 임씨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게 내 눈에는 보이는데,이렇게 나처럼 아프다고 얘기하는 놈이 없어요. 자존심이 강해서.저도 오늘 33년만에 처음으로 얘기한다. 창피해서 누구한테 얘기하겠나"라고 했다.

병명도 나오지 않고, 육체적 상처처럼 증빙할 만한 기록이 없으니 보훈대상 신청도 할 수없는 처지다. 임씨는 "치료는 여태까지 내 돈으로 다했죠. 국가에서 보상 처분을 안해 주는데 누가 해 줘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고 서운함을 표했다.

"그 당시에는 혼란스럽고 어려워서 안했다고 하지만 33년이 지난 지금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엄청 많아요. 미국은 이라크전 참전자라든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해 전부 치료를 하잖아요."

"제가 청와대와 국방부에 진정을 내려고 해요. 전수조사를 해야 해요. 5.18 때 투입된 병사들의 주소를 모두 추적해서 일일이 개인 진료 기록을 챙기고, 지금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고 그 사람들한테 어떠한 혜택이 있어야겠죠. 지금 저처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5.18 진압부대원 규모는 1만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 모(56) 중사는 "우리가 민주화를 진압한 사람인데,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치료를 요구할 수 없었고, 몰라서 못했다. 자꾸 가해자라고 그러니까 말도 못꺼냈다"며 임씨를 거들었다.광주에 사는 탁영환(46) 씨는 "5.18 진압부대원들도 같은 희생자들입니다. 어찌보면 더 큰 희생자들입니다. 시민들은 명예라도 있지만 이들은 죄인의 굴레를 쓰고 있죠. 이들의 고통을 치유해서 정치군인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5.18 진압부대원들에게도 이제는 치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5.18의 아픔과 상처를 딛고 일어선 광주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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