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은인'' 카다피의 등에 칼을 꽂다

[포인트 뉴스]

김중호 기자가 매일 아침 그날 있을 뉴스의 핵심을 꼭 짚어드립니다. [편집자 주]

한국 외교부는 23일 오후 ''한국경제발전의 은인''의 등에 칼을 꽂는 결정을 내립니다.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를 막내리게 만든 리비아 반군, 과도정부위원회(NTC)와 접촉을 늘리고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죠.

외교부에서는 반군에 대해 100만 달러를 직접 지원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 고위급 인사를 직접 파견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아마드 카다피란 인물은 현란한 몸짓, 과격한 언동과 기행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1970년대 한국경제, 특히 건설업에 종사한 사람들에게는 ''은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겁니다.

1977년 국내 건설업체가 처음 리비아에 진출한 이후 현재까지 한국건설업계가 리비아에서 수주한 건설 프로젝트만 366억달러.

특히 리비아 하면 떠오르는 건설사로는 동아,대우 건설을 꼽을 수 있겠지요.

최원석 전 회장의 동아건설은 1984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입찰권을 따내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지하에서 뽑아낸 물을 리비아 북부 벵가지와 시르테까지 보내는 총 1874km의 인공수로를 건설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동아시아의 잘알려지지도 않은 건설사에 주어졌기 때문이죠.

''역사적''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을 만큼 사업비만으로도 37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됐습니다.

1984년 당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950억달러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해 국민생산의 3% 가량을 공사 한건 수주로 달성해 버린 것입니다.

대우건설도 리비아에서 100억 달러 이상 공사를 수주해내면서 당시 한국 건설의 중동 바람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리비아 건설경기가 최고였을때는 무려 2만여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리비아 현장에서 땀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들이 리비아에서 벌어들인 값진 오일머니는 국내 중산층을 형성해 소비기반을 만들었고 산업발전의 기반이 되는 자본축적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한국건설의 리비아 성공기에는 무아마드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리비아는 곧 카다피''인 현실에서 카다피의 비호가 없었다면 지금과도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인지도 낮은 한국 건설업체들이 석유 재벌 리비아로부터 그토록 많은 공사를 수주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카다피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맺은 각별한 인연을 바탕으로 한국 건설업체의 든든한 후견인 역을 자처했습니다.

이런 카다피가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했지만 그동안 카다피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었던 한국 정부의 조치는 단호했습니다.

한국정부는 ''은인'' 카다피의 안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현재 리비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건설사들의 공사 계약이 반군이 들어선 다음에도 연장될 수 있도록 반군측의 환심을 사는데 모든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은 전세계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냉혹하고 가차없는 국제외교의 현실이니까요.

이런 한국정부의 배은망덕한 조치는 거꾸로 지금 현재 자신이 처한 냉엄한 외교현실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미,중,일,러 4대국 틈바구니에서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한국.

그런 상황에서도 ''영원한 혈맹'', ''철천지 원수''라는 환상에 집착하고 있는 순진한 한국외교의 현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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