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리콜 파문과 美-日의 감정싸움

언론의 ''도요타 때리기''속 美당국의 결함 묵인 의혹 제기...''불똥'' 확산되나

"미국이 압력을 가한 뒤에야 도요타가 마지 못해 리콜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리콜 대상인 도요타 자동차를 보유한 (미국) 운전자들은 운행을 중단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 이슈가 된 도요타 리콜사태와 관련해 미국의 교통안전 정책을 책임진 레이 러후드 교통장관의 최근 언급이다.

러후드 장관은 이후 발언의 민감성을 의식한 듯 유감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도요타 차량 4백만대의 리콜이 실시되고 있는 미국내 소비자들의 우려는 높아질대로 높아졌다.

콜로라도주에서는 도요타를 상대로 리콜 차량 보유자들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까지 제기됐다. 미국 언론들도 지난 주 내내 도요타 사태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도요타 때리기''에 가세했다.

지난해 8월 샌디에이고에서 렉서스를 몰다 일가족 4명이 숨진 사고 당시의 911 신고 전화 녹음 테이프가 공개됐고, 리콜 대상이 아닌 2005년식 캠리의 피해 사례도 폭로됐다. 또 도요타가 미국 법을 어겨가며 차량 결함을 숨겨왔다는 전직 도요타 직원의 주장도 소개됐다.

그런가 하면 일부 언론들은 문제가 된 가속페달의 결함에서 ''전자속도 제어시스템'' 쪽으로 도요타 흠집내기의 초점을 맞추고 나섰다. 만일 실제 결함이 가속페달 뿐만 아니라 전자시스템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도요타 차량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확대되는 심각한 상황이 된다.


이를 입증하려는 듯 일부 언론들은 도요타의 인기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의 전자제어 소프트웨어 결함을 지적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의 경험 사례를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이에 대해 도요타 측은 전자시스템의 결함 가능성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미 교통당국은 전자시스템 결함 가능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정부와 언론이 이례적일 정도로 도요타 리콜사태에 한목소리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급기야 일본의 일부 우익 언론들은 미국 정부와 언론의 ''도요타 때리기''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양국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지속해온 하토야마 정권과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 신경전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도요타 리콜 사태로부터 반사이익만을 챙길 수 있는 처지일까. 이미 리콜 파문의 여파로 도요타는 미국내 1월 판매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6% 급감한 반면 포드와 제너럴모터스 등은 판매 신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미국 교통당국과 도요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리콜 파문이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이미 3년전에 일부 도요타 차량의 급발진 문제를 알고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ABC방송도 미 교통안전국에 근무했던 도요타 직원의 법원 증언을 인용해 차량 결함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묵인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러후드 장관의 도요타 비난 발언이 미국 의회의 ''도요타 청문회''를 앞두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면서 ''불똥''이 미국 정부내로 번질 개연성이 커졌다.

이런 가운데 포드 자동차도 도요타 프리우스에 이어 하이브리드 차량 두 모델의 제동장치 결함을 자진 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형 퓨전과 머큐리 밀란 1만7600대가 리콜 대상이다.

글로벌 자동차업계 1위로 군림해온 도요타의 리콜 파문이 미국 입장에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형국인 것이다. 물론 이번 리콜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도요타 자동차다.

리콜 사태 발생 2주만에 시가총액이 40조원이나 빠져 나가고, 리콜에 따른 손실규모도 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창업주의 증손자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1주일새 두 번씩이나 고개를 숙였다.

일본 내부에서는 자칫 도요타가 대응을 잘못할 경우 일본 제품 전반으로까지 신뢰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도요타는 일본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1위, 직원 수 2위인 대표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는 ''자동차 왕국''의 지위를 되찾으려는 미국과 이를 지키려는 일본의 내재된 갈등을 더욱 촉발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우리 입장에서는 안전과 품질, 신뢰가 기업의 생명이라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