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전두환 신군부의 불법 비상계엄에 맞서 광주의 참상을 알린 고 김영수 목사가 41년 만에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습니다.
신앙 양심으로 신군부에 맞섰던 고인의 삶과 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5.18 유공자 고 김영수 목사가 41년만에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김 목사는 광주민중항쟁의 비극이 철저하게 감춰지고 왜곡되던 시기, 광주의 참상을 용기 있게 알린 목회자였습니다.
김의기 열사의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목회하던 강화지역 청년들에게 나누다가 계엄법 위반으로 끌려가 옥고를 치렀고, 출소 후 수감생활과 고문 후유증으로 급성 백혈병을 얻어 3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송병구 이사 /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광주의 비극에 함께 아파한 것입니다. 참 목회자다운 양심과 태도였습니다. 석방 후에도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과 무력감으로 몸부림쳤던 것이 병의 원인이었습니다."

안장예식 참석자들은 "김영수 목사는 가난과 나눔을 예수의 길로 여기며 일생을 억압 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분이었다"며 "민족의 아픈 역사 속에서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살고자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김 목사는 감신대를 졸업한 뒤 파푸아뉴기니 선교사로 파송될 예정이었지만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불의에 맞서 학생운동과 야학, 민주화운동 등에 헌신했습니다.
평화시장 미성년 노동자를 위한 동대문교회 야학, 재건중학교 교감을 지냈으며 감신대 내 산업선교회를 조직해 피복공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는 사회선교에 깊이 참여했습니다.
[이정배 목사 / 감리교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그에 앞서 정치적, 사회적 의미로 고백되었습니다. 가난한 자, 병자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에서 그들의 삶을 달리 만드는 것을 기적의 본 뜻이라고 여겼습니다. 그의 기도는 세상과 맞서는 결단의 길이었습니다. '회피냐 도전이냐'의 선택에서 고인은 항시 도전의 길을 택했습니다."
[남영숙 목사 / 고 김영수 목사 아내]
"(남편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불의에 대해서는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어요. 정말 타협하지 않고, 옳은 건 옳은 거고, 맞서 싸워야 될 것은 싸워야 되는 저항 정신이 엄청난 분이었고, 대신 사회적인 약자, 소수자, 정말 그 힘없는 권력에 짓밟히는 민중, 그런 분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과 섬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제가 김영수 목사를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김영수 목사의 아내, 남영숙 목사는 "부당한 비상계엄에 맞서 싸웠던 김 목사의 이장을 준비하는 사이 또다시 비상 계엄이 터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했다"며 "김 목사가 감당한 예언자적 삶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공공재로 기억되고 사용되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남영숙 목사 / 고 김영수 목사 아내]
"피 흘린 이들의 많은 피들이 민주주의를 꽃피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갔잖아요. 이 사람이 이 상황을 보면 뭐라고 할까, 정말 역사의 비애도 느끼고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말씀대로 예수님의 행동대로 실천대로 살아간다면 지금의 이 잘못된 물신주의, 권력에 아부하는, 권력화되는 이런 것에서 전부 해방될 수가 있다고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안장예식 참가자들은 "김영수 목사와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시대의 부름에 응답한 '작은 예수들'의 삶이 조명 받길 소망한다"며 "이들의 정신이 부활할 때 비로소 온전한 믿음의 역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스탠딩]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 고 김영수 목사의 삶과 정신은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울림 있는 메세지를 주고 있습니다.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영상기자 이정우] [영상편집 김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