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비리로 얼룩진 마을방송…'패밀리 업체' 허위세금계산서 발행 논란 ②비리로 얼룩진 마을방송…충북 진천서도 허위세금계산서 의혹 ③비리로 얼룩진 마을방송… '판박이' 금품 로비입찰 ④비리로 얼룩진 마을방송…계속된 말 바뀌기 위증 논란 비화 ⑤불법발신번호 변작…KT '행정처분' 업체는 '이상 無', 왜? (계속) |
전국 지방자치단체 재난 예·경보시스템의 통합·연계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신번호 변작(거짓표시)이 이뤄졌다는 의혹과 관련해 해당 번호를 승인한 KT에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정작 발신번호 변작을 실행한 업체는 전기통신사업법과 관련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아 관계 당국이 이를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굳이 고발?"…발신번호 변작, 법망 피한 '무등록업체'
23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2022년 5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KT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KT가 재난예경보 동보장비 발신번호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전기통신번호 관리세칙에서 허용하지 않은 번호(073, 077 등)를 사용한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제 84조의 2(전화번호의 거짓표시 금지 및 이용자 보호)를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전라북도는 지난 2021년 실시한 재난예경보통합시스템에 대한 특정감사를 통해 보안을 명목으로 한 발신번호변작 신청이 감독관도 모르게 이뤄지는 등 절차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통합·연계를 방해하는 기능인지에 대해서도 내부 검토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발신번호 변작을 한 업체의 영리행위에 이용당하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과기부 현지 조사 등을 통해 전라북도 재난예경보시스템에서 불법발신번호변작이 이뤄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를 허용한 KT는 행정처분을 받은 반면 발신번호를 변작한 업체는 '무등록업체'라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시스템 납품 업체(O업체)가 전기통신 사업자에 해당되지 않은 업체, 즉 무등록사업자는 시정명령의 대상이 아니다"며 "고발을 굳이 이쪽(과기정통부)에서 하지 않고 아마 수사기관이 인지하면 사법 처리가 되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KT 측은 전북도로부터 공문이 온대로 처리했을 뿐이고, 변작 등의 문제를 살피지 못해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KT의 이 같은 해명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전라북도는 당시 공문을 통해 073(이하 9자리 이내), 077(이하 9자리 이내), 0103(이하 8자리 이내) 에 대해서만 발신번호변작 승인 요청을 했을 뿐이다.
따라서 072, 074, 075, 076, 078, 083, 088 등 전라북도 서버에서 확인된 다른 번호는 공문과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불법 여하를 떠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번호들이다.
이와 관련해 전북도 관계자는 "발신번호 변작에 대한 승인 요청을 보낸 담당 공무원은 내부 감사를 통해 처분을 받았다"며 "다만, 해당 공무원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 완수를 위해 발신번호 변작이 필요하다'는 업체의 말을 믿고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허용되지 않은 번호를 사용중인 지자체를 파악해 적법 번호로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며 "지난해 9월, 지자체 전원 변경 조치가 완료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발신번호 변작 닮은 꼴…대법 '타인의 통신 매개는 불법'
발신번호 변작 행위는 보이스피싱 범죄 주로 쓰이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불법적 발신번호 변작(변경) 행위로 208개 통신사업 업체가 적발돼 10억여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발신번호 변작은 전화 및 문자를 보낼 때 실제 발신하는 번호 외 다른 전화번호 등으로 표시하는 행위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의뢰인 줄 몰랐더라도 번호를 조작해 피해자들에게 표시되도록 했다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도 나타났다.
대법원 2부(권영준 대법관)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대법원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게 통신사의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해 타인의 통신을 매개한 행위 자체가 불법이다'고 판시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4조의2는 누구든지 영리를 목적으로 송신인의 전화번호를 변작하는 등 거짓으로 표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O업체가 운용한 발신번호변작과 관련해 과기정통부가 조사를 벌여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전기통신번호관리세칙)임을 통보했지만, 정작 발신번호 변작을 행한 업체는 처벌을 피하고 있는 현실이다.
도내 한 변호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했다면, 누구든지 실행(발신번호 변작)한 자가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인데 관계 기관만 행정처분을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보인다"며 "피해를 본 곳이나 관리감독 기관에서 고발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O업체 측은 2021년 10월 13일 법정 증언(전주지법 2020가합710)에서 "발신번호변작 번호가 장비의 고유번호이며 업체마다 다르고 장비가 정상 작동하도록 심어놓은 코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코드를 업체별 각 장비에 맞게 보내야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방송 여부 결과값을 보내도록 구성돼 있는데 O업체는 이를 '프로토콜'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또, 단순한 CID(발신자 확인전화번호) 인식 기능이 아니어서 전화번호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해 발신번호변작이 애초 법 취지와는 다르게 운용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이와 관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021년 8월 O업체에 대한 전화번호 변작 승인 여부를 묻는 전라북도의 확인 요청에 대해 "승인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