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육을 이끌 차기 수장이 누가 될까.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이 3선에 도전하는 가운데 이른바 범야권 후보들이 단일화에 성공할지가 변수다.
이 회장은 최근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심사를 위한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엘리트와 생활체육 통합 체육회 선거에서 당선된 뒤 2020년에 재선에도 성공했고, 바야흐로 3연임에 도전할 태세다.
당초 이 회장은 지난 17일 기자 회견에서 3연임과 관련해 "저도 후보자가 되려면 절차를 밟으면 된다"면서 "못하게 막혀 있는 상황이 아니고 심의를 받으면 된다"고 도전을 시사했다. 이번 자료 제출로 사실상 출마 의지를 밝힌 모양새다.
물론 공정위 심사를 거쳐야 한다. 체육회 공정위 3연임 후보자 심의 기준은 '재정 기여, 주요 국제 대회 성적, 단체 평가 등 지표를 계량화해 평가한 결과 그 기여가 명확한 경우'로 다소 모호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체육회의 상위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회장의 출마를 막으려고 압박하고 있다. 문체부는 최근 체육회 공정위 구성과 운영을 개선하라고 체육회에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체육계에서는 이 회장이 공정위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회장은 17일 회견에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제 마음대로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관련 규정을 바꾸라는 권고는 지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뜻에 반해 3연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체육회 공정위는 이기흥 회장과 오한남 대한배구협회장 등 3선 도전 의지를 밝힌 종목 단체 회장들을 대상으로 11월초 소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하고 12일 전체 회의에서 이들의 선거 출마 적부를 결정한다.
이에 앞서 체육회장 선거에 다수의 후보들이 뛰어들었다.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과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등이다.
유 전 회장과 강 교수가 유력 후보로 꼽힌다. 유 전 회장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출신이다. 강 교수는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농여중 교사와 하키부 감독을 지낸 뒤 1989년부터 단국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체육학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40대 초반의 유 전 회장은 "어리다고 하지만 선수부터 지도자, IOC 위원, 경기 단체장까지 35년 경력"이라면서 "여기에 창의력, 추진력, 체력 등 젊은 패기까지 준비된 체육회장 후보"라고 강조한다. 이기흥 회장과 같은 69세 강 교수는 "현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 회장의 전횡을 막을 유일한 경륜 있는 후보"라면서 "한국 체육에 헌신해온 만큼 개혁을 위해 나섰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관건은 단일화다. 앞서 2번의 체육회장 선거에서 이 회장에 맞설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6년 이 회장은 제40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유효 투표수 892표 중 약 33%인 294표를 받아 장호성 당시 단국대 총장(213표)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출신 전병관 당시 경희대 교수(189표), '사라예보의 기적'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171표) 등을 제쳤다. 4년 뒤에는 이 회장이 46.4%의 지지율로 25.7%를 기록한 강 교수, 이종걸 후보(21.43%), 유준상 후보(6.53%) 등을 제쳤다.
이번에도 이 회장이 8년 동안 체육회를 이끌면서 지지 기반을 다져온 만큼 3연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각 종목 단체 사무처장들 중 절반 정도가 이 회장을 지지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후보들도 단일화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강 교수는 지난 23일 출마 회견 뒤 CBS 노컷뉴스에 "이 회장의 3연임을 막기 위해서는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했고, 유 전 회장도 30일 "단일화를 위해 항상 열려 있는 자세"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느 한 명이 양보를 해야 하는 만큼 단일화가 쉽지 않다. 강 교수는 "8년 전 장 총장을 모시고 선거를 치렀고, 4년 뒤에는 내가 직접 나간 만큼 누구보다 체육회장 선거를 잘 알고 있다"면서 "3년 반 동안 전국을 다니며 지지 기반을 다져온 만큼 이번에는 이 회장과 한판 붙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유 전 회장도 "선수 경력과 행정 경험, 국제적인 감각까지 체육회장에 걸맞는 실력을 갖췄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체육계의 의견도 팽팽하다. 한 관계자는 "강 교수가 체육회장을 맡고 유 전 회장은 IOC 위원 등 국제적인 활동을 하도록 역할 분담을 하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의 명성이 높은 만큼 전면에 나서고 강 교수가 뒤를 받치면 이 회장의 연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변수는 현 정부의 의중이다. 문체부와 맞서는 이 회장의 대항마를 정해야 하는데 체육계에서는 아직 현 정권이 유 전 회장과 강 교수 중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연 이 회장의 3연임이 이뤄질지, 범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공해 또 다른 체육계 대통령이 탄생할지 내년 1월 체육회장 선거를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