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무리한 얼차려로 숨진 박모 훈련병과 함께 군기훈련을 받은 동료 훈련병들의 사건 당시 구체적인 피해 증언이 나왔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두고 가해자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식의 주장을 폈고 고인의 유가족들은 두 사람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춘천지법 형사2부(김성래 부장판사)는 27일 중대장 강모(27·대위)씨와 부중대장 남모(25·중위)씨의 학대치사 및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 사건 두 번째 공판을 열었다.
이날 예정된 증인신문 전 남씨 측 변호인은 전날 제출한 공판 절차 의견서를 토대로 "학대 행위는 인정한다"며 학대치사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입장을 일부 바꿨으나 박 훈련병의 사망 예견 가능성은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동료 훈련병 4명이 겪은 구체적인 피해 사실과 피고인들의 개별적 군기훈련 지시 과정 등 사건 전반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훈련병들 중 3명은 직접 법정에 나와 진술했으며 나머지 1명은 피고인들과 대면을 원하지 않아 별도 공간에서 비대면 신문이 이뤄졌다.
이날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부중대장 남씨가 훈련병들이 떠들었다는 이유로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와 바닥을 치거나 위협한 뒤 이튿날 소명기회도 받지 못하고 완전군장을 멘 뒤 군기훈련을 받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들은 당시 남씨가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 두 바퀴를 걷도록 지시했으나 이후 강씨가 '부중대장 말을 안 듣냐. 나한테 도전하는 거냐'라고 말한 뒤 연병장을 뛰고 팔굽혀펴기를 반복해 시키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완전군장 결속 과정을 묻는 검찰 측 질문에 동료 훈련병 네 사람은 모두 "모포와 베개, 야전삽, 수통 등을 넣고 나머지를 책으로 꽉 채우게 했다. 책만 40권에 달했다"는 공통적인 답변을 내놨으며 두 사람에 대한 형사 처벌을 요구했다.
첫 증인신문으로 출석한 동료 훈련병 A씨는 "팔굽혀펴기를 하던 동기 군장에서 책들이 다 떨어지기 시작했고 혼자 메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대장이 '남자가 이거 하나도 못 드냐. 울지말라'고 소리쳤다"며 "(박 훈련병이) 쓰러지고 의무병으로부터 맥박이 잘 뛴다고 들은 중대장이 '꾀병을 부리지 말라'며 전투조끼 목 부분을 잡고 흔들면서 일어나라고 욕설을 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로부터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에 A씨는 "군기교육은 당연히 받는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다"라며 "마지막에 그 친구에 대한 구급처치가 빨리 됐으면 살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반대 신문에서 남씨 측은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 두 바퀴를 걷는 지시 외에 군기훈련은 지시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네 사람에게 질의했고 강씨 측은 완전군장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인신문을 진행하는 등 '책임 떠넘기기식' 모습을 보였다.
동료 훈련병 B씨는 박 훈련병이 최초 쓰러진 뒤 상황을 묻는 검찰 측 질문에 "처음엔 누워서 대답도 하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며 "1시간 정도 군기훈련을 받았던 것 같은데 물이나 휴식 시간도 부여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강씨 측 변호인은 반대 신문에서 숨진 박 훈련병이 군기훈련을 받다 쓰러진 뒤 정상적으로 대화를 한 사실이 있는지, 의무병이 강씨에게 박 훈련병의 호흡이 있다는 말을 했는지 등을 물었다.
억울하게 군기훈련의 피해자가 됐고 이 사건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는 피해 주장도 나왔다.
비대면 증인신문에 나선 동료 훈련병 C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생활관에서 자고 있는데 부중대장님이 들어와서 갑자기 일어나라고 한 뒤 다음날 군기훈련을 받게 됐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C씨는 "(군기훈련 뒤) 발에 피가 고여 물집이 생기고 팔에 피멍이 많이 생겼다"며 "오늘 오전에 PTSD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약 3시간 가까운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 앞에 선 박 훈련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쓰러진 뒤 입에 거품을 물었다는 내용은 당시 소대장이 중대장 명령을 받고 저한테 전화했을 때 없었던 내용"이라며 "제가 가야 되는게 아니냐고 묻자 '오실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처음 전달 과정도 거짓말이고 은폐했던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모두가 아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유족 측 변호인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 행태로 책임을 회피해 왔는데 오늘 진술 과정에서 구체적인 학대나 가혹행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며 "훈련병 중 한 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데 검찰에서 학대치상 혐의를 적용해 공소장 변경도 신중히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은 "부중대장이 알루미늄 배트를 끌고 찍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새로운 증언으로 나왔는데 이 부분은 경찰이나 군에서 유족들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라며 "쓰러진 고인에게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한 것도 새로운 증언"이라고 말했다.
임 소장은 "두 부분은 유족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동시에 국민적 분노를 더 가라앉히기 위한 은폐 행위"라며 "동료 훈련병들에 대한 의료적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소속 부대 훈련 사정 등으로 이날 참석하지 못한 훈련병 1명과 당시 훈련 조교 등 3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다음 기일 진행하기로 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9월 13일 오후 3시 춘천지법에서 열린다.
이들은 지난 5월 23일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을 대상으로 군기훈련을 실시하면서 군기훈련 규정을 위반하고 실신한 박 훈련병에게 적절하게 조처하지 않아 박 훈련병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첫 재판에서 강씨 측은 "숨진 피해자를 포함해 나머지 피해자들에게 군기훈련을 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을 뿐 학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며 학대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남씨 측도 "일부 (군기훈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완전군장 상태로 (군기훈련을) 집행한 사실은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으나 강씨 측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