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불어온 'R(Recession, 경기 침체)의 공포'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비록 주식시장은 반등에 성공하는 듯 하지만 자칫 수출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 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미국 뉴욕증시 주요 지수가 5일(현지시간) 2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 2일 발표된 미국의 제조업·고용 등 지표가 부진하면서 미국 증시가 폭락하기 시작해 전 세계 증권시장을 휩쓴 '블랙 먼데이'의 충격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셈이다.
한국 역시 지난 5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8.77%, 코스닥은 11.3% 하락했다. 또 '사이드카', '서킷브레이커'가 연이어 발동돼 거래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번 증시 폭락 사태에 대해 정부는 △7월 고용지표 부진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 부각 △주요 빅테크 기업 실적 우려와 밸류에이션 부담 △일본 은행의 금리 인상 후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중동지역 불안 재부각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다만 이러한 요인에 관한 미국 시장의 변동 상황에 대해 충분한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말 이후 가장 먼저 문을 연 아시아 증시가 과도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국내 주식시장은 하루만에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3.76% 상승한 2533.34로 출발하며 2500선을 회복했다. 코스피 지수는 이날 오전 5% 넘게 상승하며 전날 하락폭(-8.77%)을 되돌렸다.
다만 요동친 금융시장의 상태를 떠나 글로벌 실물 경제가 실제로 얼마나 성장 동력에 타격을 입었는가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이번 증시 폭락 사태의 진원에 AI(인공지능)·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주가 하락이 주목된다. 'AI 거품론'까지 제기되면서 그동안 올해 상반기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반도체 수출까지 위축될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반도체 수출액은 월간 기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꾸준히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한 7월 대미수출은 102억 달러로, 7월 기준 최대 기록이자 12개월 연속 월별 최대 실적을 세웠다.
덕분에 1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예상을 뛰어넘은 1.3%를 기록하고, 정부와 각종 국제기구도 올해 성장률을 상향조정 하는 등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 했다. 비록 2분기에는 0.2%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상반기 전체로는 전년동기대비 2.8% 성장해 2022년 상반기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 테크업종의 2분기 실적이 부진한데다 AI가 창출할 새로운 산업의 수익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자칫 한국의 반도체 수출까지 힘이 빠질 위기다.
또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일부 환원한 가운데 이스라엘-이란 갈등으로 중동지역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유가가 출렁이면, 연초 급등했던 농산물 가격을 붙잡으며 간신히 안정시킨 소비자물가에 다시 상승 압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내수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외악재까지 불거졌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지난 2분기 소매판매는 전년동기대비 2.9% 감소했는데, 2009년 1분기(-4.5%)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한 기록이다. 2분기 설비투자는 1.3%, 건설기성(불변)은 2.4% 감소하는 등 투자도 부진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날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어 한국 경제가 점차 회복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외환·자금시장도 양호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고, 정부·한은이 대외 충격에 따른 시장 변동성에 대해 충분한 정책 대응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작 정부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대안을 내놓을 여유가 크지 않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은 168조 6천억 원으로 역대급 '세수 펑크'를 빚었던 전년보다 5.6% 감소하며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확실시 되고 있다. 재정에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경기 회복을 위한 확실한 카드를 내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일단 과도한 불안감을 막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중동 지정학적 불안 재확산, 미 대선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당분간 관계기관이 가장 높은 경계감을 갖고 24시간 합동 점검체계를 지속 가동하라"며 "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Contingency Plan)에 따라 긴밀히 공조해 대응하고, 필요시 시장 안정조치들이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 대응체계 유지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