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등을 하는 선수는 안쓰럽고 불행할 줄 알았는데 막상 4등을 하니까 많이 얻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올림픽처럼 금·은·동메달을 수여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경기 당일 순간의 만족도를 따져보면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은메달의 가치가 분명 더 높지만 은메달은 마지막 경기에서 진 것이고 동메달은 그래도 마지막 경기를 이겨 '노메달' 위기를 넘긴 것이다.
그렇다면 4위는? 메달이 없더라도 세계 4위를 한 것만으로도 값진 성과로 볼 수 있지만 정작 선수는 메달을 눈앞에 두고 메달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의 최세빈(전남도청)은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개인전에서 4위를 차지했다.
최세빈은 16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이자 일본 선수단의 개회식 기수였던 에무라 미사키를 누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비록 준결승전 고비를 못 넘겼지만 올하 하를란(작년 세계선수권에서 모국을 침공한 러시아의 선수와 악수를 거부했던 우크라이나의 영웅)을 만난 동메달 결정전에서 11-5로 앞서가며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 했다.
그러나 최세빈은 하를란에게 14-15로 역전패를 당해 아깝게 메달을 놓쳤다.
최세빈의 멘탈은 아쉬움 가득한 패배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최세빈은 먼저 "이기고 있다가 진 적이 많았는데 그게 오늘인 것 같아서 아쉽다. 올림픽인데 메달을 못 딴 게 좀 크다. 즐기자고 말은 했지만 정작 메달을 못 따니까 아쉽다"고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최세빈은 자신의 패인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마음이 급했고 중요한 순간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 결과라고 했다.
냉철한 자기 객관화는 중요한 성장의 과정이다. 최세빈은 "운영으로 충분히 이끌어 갈 수 있는 상황이고 제가 이기고 있었는데 제가 불안했던 게 컸다"며 "4등을 하는 선수는 안쓰럽고 불행할 줄 알았는데 막상 4등을 하니까 많이 얻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단한 멘탈이다. 4위에 머문 아쉬움을 오히려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자세다. 최세빈의 세계 랭킹은 24위. 처음 출전하는 올림픽을 앞두고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자 사브르 종목의 기대주로 우뚝 섰다.
최세빈은 오는 8월 3일 윤지수(서울특별시청), 전하영(서울특별시청), 전은혜(인천광역시 중구청)와 함께 단체전에 출전한다. '값진 4위'의 경험을 통해 더 성장했을 최세빈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