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벌어진 대한항공 칼(KAL)기 납북 미수사건이라는 초유의 '하이재킹' 사건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과 보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영화 '하이재킹'은 실제 하이재킹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지금까지도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분단과 이념 갈등의 비극을 조명한다.
1971년 겨울 속초공항, 여객기 조종사 태인(하정우)과 규식(성동일)은 김포행 비행에 나선다.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안내에 따라 탑승 중인 승객들의 분주함도 잠시,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제폭탄이 터지며 기내는 아수라장이 된다.
여객기를 통째로 납치하려는 용대(여진구)는 조종실을 장악하고 무작정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 협박한다. 폭발 충격으로 규식이 한쪽 시력을 잃은 가운데, 태인은 혼란스러운 기내에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여객기를 무사히 착륙시키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하이재킹'(감독 김성한)은 제목 그대로 하이재킹(운항 중인 항공기를 불법으로 납치하는 행위), 그것도 실제 있었던 하이재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는 1969년 대한항공 칼(KAL)기 납북사건에 이어 벌어진 1971년 대한항공 칼(KAL)기 납북 미수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지난 1971년 1월 23일 강원도 속초공항에서 서울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HL5012 여객기가 강원도 강릉 상공에서 하이재킹당해 납북될 뻔했던 사건이 벌어진다. 강원 고성에 살면서 월북을 계획하던 20대 남성 김상태가 벌인 사건으로, 당시 범인을 제압하던 과정에서 여객기에 탑승했던 수습 조종사 전명세가 사망했다.
칼기 납북 미수사건 당시 범인 김상태의 사망으로 자세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이재킹'은 이 밝혀지지 않은 범행 동기를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메워 넣었다. 바로 지금까지도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극인 '분단'과 '이념'이다.
1960~70년대는 대대적으로 실시된 반공교육으로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시절이다. '하이재킹'은 이념으로 인한 민족과 역사의 비극이 개인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결국 하이재킹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낸 원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전쟁과 이로 인해 남과 북으로 나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인 만큼,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이념 갈등이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갈등과 대립이 당연했고, 분단과 이념 갈등이 만들어낸 폭력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게 됐다.
영화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비행기 납북사건까지 벌어지며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더욱 높아진 시대다. 용대(여진구)와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차별받은 것은 물론 용대는 누명을 쓰고 복역까지 하게 된다. 출소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까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은 용대를 남쪽에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는 분단과 이념이 만든 비극적인 인물 용대와 용대의 하이재킹으로 인해 죽음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려는 부기장 태인(하정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두 사람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하이재킹'은 '선택'의 이야기가 된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채 대립하는 태인과 용대는 비슷한 상황 설정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종착지가 갈리게 된다. 두 사람 모두 현재의 비행기 안에서 각자 과거 자신이 마주해야 했던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과거에는 비행기 밖에 있었지만, 현재에는 비행기 안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태인은 새로운 선택을 통해 과거에 짊어졌던 마음의 짐을 풀게 된다. 그러나 용대는 결국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목적지를 향해 어떤 선택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그리고 그 끝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대비 역시 '하이재킹'을 끌어가는 주요 동력 중 하나다.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하이재킹'을 견인하는 가장 힘은 뭐니 뭐니 해도 태인의 선택과 그 결과다.
그러나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올드하다는 점과 사건과 상황이 긴박감 넘치는 데 반해 캐릭터는 평이하다는 점은 '하이재킹'이 목적지까지 순항하는 데 있어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가운데 악역으로 스크린에 돌아온 여진구의 연기력은 유독 돋보인다. 여진구가 앞으로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 안에 숨겨진 여러 가지 모습을 꺼내 보여주길 기대하게 만든다.
100분 상영, 6월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