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판결문을 일부 수정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최 회장 측은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돼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 관장 측은 '침소봉대'라며 일축했다.
판결문 수정에도 재산분할 규모는 그대로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부장판사)는 전날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문을 일부 수정(경정)해 정본을 양측에 다시 송달했다. 다만 관심을 끈 1조3808억원대 재산분할은 유지했다.
이는 같은 날 오전 최 회장 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1998년 SK C&C로 사명을 바꾼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치는 두 차례 액면분할을 거치며, 1998년 5월 당시 주식 가액이 주당 100원이 아니라 1천원이 맞다"고 한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주식 가액이 달라지면서 최 회장 재임 기간 중 기여도도 355배에서 35.6배로 수정됐다.
애초 재판부는 1994년 11월 최 회장이 취득할 당시 대한텔레콤의 가치를 주당 8원, 최종현 선대 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 주당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했다.
SK 측은 최 회장이 '승계 상속' 받은 부분이 재평가됐으니 재산 분할 결과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최 회장 측은 재판에서 SK 주식은 상속과 증여로 형성된 재산으로, 특히 그 가치가 선대 회장 시절 많이 증가한 만큼 재산분할 대상이 아닌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해 왔다.
최 회장 측은 재판부가 판결문 경정 결정을 내리자 "(재판부가) 스스로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이나, 계산 오류가 재산분할 범위와 비율 판단의 근거가 된 만큼 단순 경정으로 끝날 일은 아니"라며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판결의 실질적 내용을 새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재판부의 단순 경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노 관장 측은 "SK C&C 주식 가치의 막대한 상승은 그 논거 중 일부"라며 "원고(최 회장 측) 주장에 의하더라도 여전히 SK C&C 주식 가치가 막대한 상승을 이룩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결론에는 지장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노 관장 측은 "항소심 법원의 논지는 원고(최 회장 측)가 마음대로 승계 상속형 사업가인지와 자수성가형 사업가인지를 구분 짓고 재산분할 법리를 극히 왜곡해 주장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를 침소봉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방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유감"이라며 "차라리 판결문 전체를 국민에게 공개해 그 당부를 판단토록 하는 방안에 대해 최 회장이 입장을 밝히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핵심은 비자금 300억" vs "단순 계산 오류 아냐"
양측의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대체로 일부 수치를 수정하더라도 재산분할 규모를 유지한 판결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분위기다.
법률사무소 새올의 이현곤 변호사는 "항소심 판결이 1심과 달라진 결정적 이유는 선대 회장 시절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에 투입됐다고 재판부가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배척하지 않고는 (다른 주장은) 큰 의미가 없다. 법원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기여도를 평가해 재산분할 비율을 정한다. 수학 공식처럼 100원짜리면 얼마, 1천원짜리면 얼마와 같이 계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당초 1조3808억원이란 역대급 재산분할 규모가 나온 데는 재판부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 측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SK(주)지분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포함됐고, 주식 가액 오류만으로는 재산 분할 대상 자체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에 근거하면 SK주식 가치 상승에 선대 회장과 최 회장이 각각 얼마를 기여했는지는 쟁점에서 비껴간다.
한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는 "통상 단순 숫자 오류로 판결 경정을 한 부분에 대해 대법원에서 달리 판단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며 "혼인 기간이 긴 만큼 금전적인 부분만이 기여도 판단 근거는 아니"라고 했다. 또 다른 가사 전문 변호사도 "대법원은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으로 사실관계가 일부 누락되고 잘못했다고 해서 바로 파기환송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면에 대법원에서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온다. 단순 '계산 오류'를 넘어 재판부 판단까지 뒤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주식 가액 평가를 잘못했다면, 기여 비율이나 재산 분할 금액을 변경해야 한다"며 "이는 경정 결정 사항이 아니라 정식 재판으로 변경해야 할 부분으로, 대법원 판단 대상"이라고 짚었다.
법조계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서울고법 측은 "재판부의 판결 사항"이라며 공식 입장을 자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