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6년간 퍼부은 '저출생 예산'은 약 280조. 엄청난 투자에도 올해 발표된 합계출산율은 사실상 0.6명까지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반전의 계기'조차 만들지 못했다고 우려하며 쓸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잠정)는 22만 9970명으로 전년보다 1만 9216명 줄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인 합계출산율은 0.72명(잠정)으로 전년보다 0.06명 감소했다.
한 해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주저앉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이미 가라앉은 만큼 올해 0.6명대 추락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림 센터장은 "(코로나19 등으로) 미뤄둔 출산이 이뤄졌던 2021년, 2022년에 선방한 것이고 지난해에 감소 폭은 더욱 커졌다"며 "2022년도에 첫째 아이가 2021년도에 비해 8천 명 더 태어나서 하락세가 멈추겠다고 생각했지만, 올해 4월부터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2022년까지만 해도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1명대 합계출산율을 유지했던 세종특별시마저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7명을 기록했다.
전북대학교 설동훈 사회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직장이 안정되고 주거도 안정된 사람들이 많은 지역인 세종에서도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일본보다 낮은 수준의 합계출산율이 나온 것"이라며 "세종이 가라앉았다면 우리나라 상황이 정말 암담하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정부는 곤두박질친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저출생 대응 예산은 48조 2천억 원에 달한다. 이중 부모 급여, 아동수당, 양육수당 등 자녀수당 관련 예산은 2022년보다 27% 올라 7조 502억 원이 투하됐다.
문제는 이처럼 출산한 사람들에게 직접 주어지는 수당은 늘었다지만, 근본적으로 육아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주거, 일자리·직장, 사회환경, 자산형성 등 다른 영역에서는 예산이 전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실제로 주거 영역은 8.8%(21조 3570억 원), 일자리·직장 영역은 54.8%(1조 5344억 원), 사회환경 영역은 31.9%씩(1조 8717억 원) 각각 줄었다.
직장갑질119 출산육아갑질특별위원회 조민지 위원은 "현금성 지원에 머무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출산하고 양육하는 주체인 여성들은 현금성 지원보다 양육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관적으로 와닿는 '수당 지급'에만 집중한 것으로 보이고 일자리 지원이나 주거급여 등은 줄어들어 출산하기 위한 기본 환경이 악화된 측면이 있다"며 "자녀수당은 아이를 기르는 돈을 주는 것인데 애초에 출산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수정 연구위원은 "선진국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자녀 교육비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에 맞춰 현금성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영유아 초기에만 집중된 현금성 지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기본적이라고 하는 '의식주'가 기본적인 것이 아니게 됐다"며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고, 일자리를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해결돼야 가족을 형성하고 남을 책임질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난해 정부가 단기간에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수당을 늘려 지급했지만, 청년들의 주거 부담, 고용불안, 경쟁 심화 등 저출산 현상을 심화시킨 핵심 요인들을 풀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저출산 현상은 정부 혼자서 단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결국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의 키를 잡고 있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뿐 아니라 다른 정부 부처와 민간 모두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고려대학교 윤인진 사회학과 교수는 "공공과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 출산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지금 하고 있는 정책들은 미봉책밖에 안 된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형 주택도 늘려야 하고, 우리나라의 상속 제도도 현실적으로 바꿔서 상속을 부의 세습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정이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