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한 채'로 꼽혔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한 때는 재건축 아파트는 내 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큰 평수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며 시세차익을 대거 챙길 수 있어서 각광받았고, 그 중에서도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알짜 중에 알짜'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단지도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가 하면 기존 공사 단지에서도 당초 예상보다 훨씬 큰 공사비 청구서를 다시 전달 받고 이에 대한 조합과 시공사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이어지는 등 불확실성이 커진데 따른 것이다. 이런 경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가락동 '가락삼익맨숀' 재건축조합은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지만, 입찰에 응한 건설사가 단 한 곳도 없어 유찰됐다. 앞서 진행된 현장설명회에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금호건설, 동부건설, 효성중공업 등 8개 건설사가 참석했지만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입찰 보증금을 납부한 건설사는 없었던 것이다. 조합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원하면서도 3.3㎡당 공사비를 810만원으로 제시했는데 업계에서는 이런 조건을 건설사들이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보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공사원가와 금융비융이 증가했는데 평당(3.3㎡당) 810만원으로 강남권의 고급화 단지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화랑27차'도 시공사 모시기에 실패했다. 시공사 선정 총회에 단 한곳의 건설사도 나서지 않은 것이다. 조합은 다시 시공사 선정에 나설 예정이지만 SJ에코플랜트를 제외하면 수주 의사를 타진한 건설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은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고금리 장기화 등에 따른 이자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삼성물산(건설부문)과 현대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GS건설 등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들의 영업이익률은 전년보다 하락해 대부분 5% 안팎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내 주택 사업 비중이 큰 DL이앤씨와 GS건설 등의 영업이익이 급락했다.
또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주택 사업은 매출이 증가했더라도 원가가 급등하면서 수익률이 고꾸라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서 수주했던 현장 중 상당수는 이익이 아니라 손해를 보지 않을지 우려하는 수준이고 향후 안전 및 환경 규제 강화의 영향으로 원가는 더 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욱 철저하게 사업성을 따져서 수주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도 번지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22차'는 지난 2017년 시공사 선정 당시 평당 500만 원 선이었던 공사비를 1300만 원 수준으로 올리는 방안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가 갈등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진주'는 조합이 시공사의 요청에 따라 평당 660만 원이었던 공사비를 889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조합 총회에서 승인 받지 못했다.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재건축 아파트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향후 공사 원가 상승 등에 따라 추가 분담금을 얼마나 더 낼지 불확실한 점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현대' 전용 160㎡(15층)는 올해 52억원(1층)에 새 주인을 찾았다. 층이 다르지만 같은 평형이 지난해 7월 65억원에 팔렸던 점을 감안하면 13억원이 떨어진 것이다. 강남구 일원동 '개포우성' 전용 84㎡(4층)도 지난 1월 14억 5천만 원에 손바뀜 했는데 지난해 9월 같은 동 같은 평형 더 낮은 층이 21억 4500만 원(2층)에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7억 원 이상 떨어졌다.
전문가들도 실수요자들에게 이런 재건축 아파트 매수보다는 준공 10년 이내 신축 매수를 권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공사비 급등 추세에 안전 관련 비용 상승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공사 원가 상승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실수요자들에게는 고점 대비 30% 빠진 재건축 아파트보다는 고점 대비 15~20% 빠진 준공 10년 이내 신축이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