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가 병원 떠나자 백혈병 아이는 병실서 쫓겨났다

연합뉴스

오늘 아침 아이가 쓰러졌다. 14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냘픈 체격의 아이는 자기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했다.

급하게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면서 입이 타들어 갔다. 나와 같이 시꺼먼 가슴을 안고 아이의 순서를 기다리는 엄마들로 진료실 앞은 북적였다.

청룡의 해를 며칠 남겨두고 진단 받은 백혈병. 엄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경남의 집을 떠나 서울 병원 근처에 이른바 '환자방'을 얻었다. 일상이 무너진 '절망'은 아이가 서울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겨냈다.

하지만 엄마의 희망은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 발표로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현장을 속속 떠나면서다. 아이가 치료받던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병원측이 입원 불가를 통보하면서 아픈 아이를 데리고 엄마는 외래 진료를 다녀야 했다. 전공의들이 오늘 현장을 다 떠나면 그나마 진료라도 받을 수 있을지 엄마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오늘 오다가 애가 쓰러졌어요. 오늘같이 위험한 상황이 오면…입원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으니까. 수혈을 하고 다시 집에 가야 하는데 애들 중에는 위험한 경우도 많아요."

의료대란. 환자들의 간절함과 보호자의 눈물 등 절절한 사연들이 이 네 글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부의 의대증원에 반발해 수도권 빅5 병원을 비롯해 전국 수련 병원 전공의들이 20일 업무를 멈추고 연락을 차단하는 이른바 '블랙아웃'에 돌입했다. 현장에는 이미 '의료대란'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세브란스 시작으로 전공의 수천명 줄줄이 사직…정부·의협, TV토론서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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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련병원 221곳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는 모두 1만 3천명이다. 빅5 병원에만 2745명의 전공의가 근무중이다.

주요 상급병원 전공의 현황에 따르면, △서울성모 290명 △세브란스 612명 △삼성서울병원 525명 △서울대병원 740명 △서울아산 578명이다. 전공의 비율은 33~46%로 전체 의사 수의 절반에 가깝다.

세브란스의 경우 일부를 제외하고 600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 삼성서울병원(160명)과 서울성모병원(190명)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전공의 578명 상당수가 사직 의사를 전달한 걸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은 과별로 제출한 사직서를 집계해 정확한 규모를 파악중이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북대병원과 부산대병원, 충남대병원 등 전공의도 사직서를 제출하고 업무를 거부했다. 빅 5병원을 비롯해 전국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수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전공의 절반이 20일부터 업무를 거부하게 되면 의료현장의 혼란은 극심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복지부는 전날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내리는 한편, 출근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겐 현장에 복지부 직원을 급파해 업무 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와 함께 의협 집행부 2명에게 '집단행동 교사금지 명령' 위반 혐의로 의사면허 정지 행정처분에 관한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하지만 의협은 "정부의 협박성 추태에 개의치 않겠다"며 "무고한 처벌은 투쟁을 견고히 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의협은 "의사들은 파업을 하는 게 아니라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하는 정부의 압박에 의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 대책을 의료계와 논의해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20일 밤 11시 30분 MBC 100분토론에서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인사 2명, 반대 인사 2명과 함께 토론회를 연다.

의대 증원 찬성 측 인사는 유정민 복지부 의료현안추진단 전략팀장과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다. 반대 측 인사는 이동욱 경기도 의사협회장과 정재훈 가천의대 길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다.

복지부와 의협은 조만간 KBS 생방송 TV 토론회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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