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낸 직후 귀가한 가해자가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거부했다가 기소됐는데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경찰의 현장 대응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50대 A씨가 광주 서구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낸 것은 지난 2021년 11월 말.
당시 A씨는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으로 SUV 차량을 추돌했고 피해 차량 운전자는 A씨가 음주운전을 한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경찰은 A씨의 주거지를 찾아가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허락을 받은 뒤 집으로 들어갔다.
A씨는 의자에 누워 자고 있었으며 이후 경찰관들이 세 차례 음주측정을 요구했지만 거부했다.
이후 A씨는 음주측정 거부 혐의로 입건돼 기소됐으며 지난해 2월 초 이뤄진 1심 재판에서 벌금 700만 원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당시 경찰관은 피고인에게서 술 냄새가 나고 얼굴 혈색이 붉은 것을 확인하고서 음주측정에 응할 것을 요구한 사실, 그러나 피고인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호흡을 부는 시늉만 하는 등 계속해서 음주측정을 거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경찰공무원의 음주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최근 항소심 법원은 1심과 정반대의 판단을 내리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사고 이후 현장을 벗어나 현행범이 아닌 상황에서 경찰이 음주측정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영장이 있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은 피고인의 주거에 대한 수색영장 등을 발부받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의 주거에 들어가 음주측정을 요구했고 위와 같은 측정요구가 영장주의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거나 적법한 임의수사의 범위 내에 속한다고 볼 수도 없다"라며 "피고인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음주측정요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봤다.
또 "경찰이 임의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더라도 A씨가 거부할 수 있고 퇴거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을 A씨에게 사전에 고지했어야 했다"고 봤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번 항소심 판결을 두고 음주측정 거부를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지방법원 한 판사는 "이번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바뀔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며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일선 교통경찰관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음주운전 의심 운전자가 현장에서 벗어날 경우 먼저 영장을 발부받거나 긴급체포한 뒤 사후에 영장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어 사실상 음주운전 적발이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재판부에 따라 음주측정 거부 사건에 대한 판단이 다른 경우가 있다"며 "대법원에서 관련 판단이 확정될 경우 다시 한번 검토해 사후에라도 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가운데 대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