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25일(한국 시각) 카타드 도하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최종 3차전에서 말레이시아와 3-3 무승부를 거뒀다.
최악의 경기력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인 한국은 무려 107계단 아래인 130위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고전했다. 상대가 약체임을 감안하면 무승부는 패배나 다름 없는 결과다.
한국은 앞서 바레인과 1차전(3-1 승)에서 1실점, 요르단과 2차전(2-2 무)에서 2실점을 기록했다. 수비가 불안하던 와중에 이기제(수원 삼성)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해 변화가 불가피했다.
기존에는 이기제,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이상 울산 HD)가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한국은 이날 설영우, 김영권(울산 HD), 김민재, 김태환(전북 현대)으로 수비 라인을 짰다.
설영우가 이기제의 빈자리로 이동했고, 김태환이 남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정승현 대신 김영권이 김민재와 중앙 수비를 책임졌다. 무려 2명의 선수를 교체한 것.
하지만 결과는 더 참담했다. 이번 대회 최다인 3실점을 떠안았고, 역대 조별리그 최다인 6실점의 불명예를 남겼다.
한국은 2차전까지 1위 요르단과 승점은 같았지만, 골득실에서 2골 차로 뒤져 2위를 달렸다. 조 1위를 목표로 삼은 한국에 필요한 건 말레이시아전 다득점 승리였다.
이에 클린스만 감독은 공격에 치중한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1, 2차전에 선발 출전한 미드필더 박용우(알아인) 대신 공격수 정우영(슈투트가르트)을 선택했다. 기존 4-2-3-1이 아닌 4-1-4-1 포메이션을 가동한 것.
하지만 이는 김민재만 믿고 수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술이었다. 황인범(즈베즈다)이 중원에 홀로 남아 수비에 대한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했다.
한국이 1-0으로 앞선 후반 6분, 대런 록이 황인범의 공을 가로챈 뒤 파이살 할림에게 패스했다. 할림은 김민재를 제치고 한국의 골망을 갈랐다.
앞선 과정에서 록이 황인범과 충돌해 파울 여부를 두고 비디오 판독(VAR)이 진행됐다. 하지만 파울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와 할림의 득점이 인정됐다. 다소 석연찮은 판정이었지만, 클린스만의 안일한 전술 선택도 실점의 원인이 됐다.
이날 김민재를 따돌리고 득점에 성공한 할림은 경기 후 많은 관심을 받았다. 158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190cm의 장신 김민재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기지를 발휘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레이시아 영자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할림은 "책임감을 갖고 뛰었다. 모두 열심히 싸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이 매체는 "체구가 작은 윙어인 할림은 '거인' 한국을 찌르기 위해 작은 벌처럼 분주하게 윙윙거리다가 빈틈을 파고들었다"고 조명했다.
한국은 이후 설영우의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줘 1-2에 몰렸으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손흥민(토트넘)의 연속 골로 다시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경기 종료 직전 로멜 모랄레스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해 무승부에 그쳤다.
김민재를 비롯한 한국 수비는 할림에게 뒷공간을 내준 뒤 2점을 더 허용하며 무너졌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김민재는 경기 후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고 말없이 떠났다. 김민재에겐 잊고 싶은 경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