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놓고 줄다리기 중인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학교육 질(質)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를 두고 또다시 충돌했다.
정부는 의대 확대 추진에 발맞춰 의대생·전공의들의 '교육환경 개선'도 현안으로 부상했다고 주장한 반면 의협은 의대정원이 늘어날 경우 의학교육의 부실화는 불 보듯 훤하다고 반박했다. 정원이 20년 가까이 '3058명'으로 동결된 현재도 양질의 수련이 어려운데, 무턱대고 의대생 수만 늘리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취지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24일 오후 서울 중구 소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6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학교육·수련 여건 개선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유관 부처인 교육부 실무관계자도 배석했다.
양측은 회의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서정성 의협 총무이사는 교육당국의 참여를 의식한 듯 "오늘은 이제 의대 정원 숫자가 나올 수 있겠네요"라고 인사를 건넸고, 협상단장인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도 "아마 지금 이공계 학생들이 다 의대에 온다고 재수하니, 교육부도 힘드실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던졌다.
먼저 모두발언에 나선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는 현장의 의사 부족이 어느 정도인지 다각도로 확인을 하면서, 또 향후 의사 인력의 수요·공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과학적이고 정교하게 전망하고, 그에 맞는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각 의과대학이 현재, 그리고 향후 투자를 통해 교육 가능한 학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의학교육 점검반을 운영하며 그 숫자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준인지도 조사했다"고 부연했다.
또 단기간에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릴 경우, 의학교육의 질 하락에 대한 일선의 우려도 잘 알고 있다며 "이를 감안해 학교 측이 수요에 맞는 교수 확보, 시설 실습여건을 갖추기 위한 투자계획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2개월간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현 시점에서 모든 의대가 늘어난 정원을 충분히 감당할 여건은 아닐지라도 "학교 측의 적극적인 투자 계획과 의지를 확인했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의대를 보유한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지금의 교원과 시설로 가능한 증원 규모 및 추후 투자계획을 반영한 최대 수요를 조사한 바 있다.
그러자 의협은 "국내 의학교육의 실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소리라며 반발했다.
양 의장은 "'의학교육 점검반'이라는 형식적인 기구의 단기간 활동으로 우리나라 의학교육 상황을 점검했다는 정부의 주장은 너무나도 부실하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학 교육은 강의실에 의자 몇 개 더 갖다 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수많은 기초학 교수와 임상교수, 강의실·토의실, 기자재, 해부용 시신, 교육 및 수련병원 등 막대한 자원이 투입돼야 할 커다란 교육 사업"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초의학은 현 정원의 교육을 감당하는 것만도 벅찬 상태라고 언급했다. 양 의장은 "정부의 무리한 의대정원 확대 추진에 전문가들은 의학교육의 부실화를 우려하고 있다"며 "정부는 의학교육 실제 현장에 서 있는 전문가 단체가 말하는 의견을 경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서 의협이 가리킨 전문가 단체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다. KAMC는 2025학년도 대입부터 적용할 증원 규모는 '최소한'이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감축한 '350명'을 제시한 바 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충 시 정부는 의학교육 질을 담보하기 위해 어떠한 지원을 얼마나 할 계획인지', 또 만약 계획대로 정원을 늘린다면 '해당 의대생들을 어떻게 지역·필수의료 의사로 길러낼 것인지' 등을 따져 물었다.
양 의장은 "구체적인 교육 계획과 수련 환경의 개선 없이 막연히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필수의료를 늘리고 지역 간 의료격차를 좁힐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18년 폐교된 서남의대의 정원을 '떠맡은' 전북의대와 원광의대에 벌어진 대혼란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의대 증원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활용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두고는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적다'는 것과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모자라다'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사회적으로 진행된 적정의사 수에 대한 논의는 이같은 단순 논리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돼 왔다"고 주장했다.
양 의장은 "불확실성에 기반한 오늘의 결정으로 10년, 20년 (뒤), 그리고 더 먼 미래에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며 "꼭 필요한 지역과 꼭 필요한 진료분야의 의사를 확충할 수 있는 맞춤형 방안이 마련되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와 의협은 큰 틀에서 의학교육의 질과 전공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된다는 데엔 일정 공감대를 확인했다.
이날 대전협은 수련 교육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한편 실습병원의 다양화 및 질 제고, 충실한 지도전문의 제도 운영 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협회도 충분한 인프라와 기자재, 교수인력 확보, 임상실습교육의 강화와 의학교육 평가인증제도의 내실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주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김한숙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관련해 왜 의학교육 질 관련 논의는 없는지 언론에서도 지적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뿐)"이라며 "이제까지 정책 우선순위에서 빠뜨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의학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의제가 (본격적으로) 세팅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논의)계기가 마련된 김에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자는 컨센서스는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지원 등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교육부와 긴밀히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서 총무이사는 "(임상)실습 기준이 엄격해져서 (현장에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술기들이 지금 거의 없어진 상태다. 그걸 내실화하고, 40개 의대가 '똑같은 기준'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