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 정치 테러가 난무했던 시기에 일어날 법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가 백주대낮에 흉기에 맞아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죠.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피의자는 줄곧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죽이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죠.
오늘 '법정B컷'은 과거 정치 테러 사건 판결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법원은 정치 테러범들에게 어떤 처벌을 내렸을까요? 그리고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 피의자는 어떤 벌을 받게 될까요?
朴 얼굴 테러범, 상해 혐의 등 징역 11년… 李 목 공격은?
부산 가덕도에서 지난 2일,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이 발생한 직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사건이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입니다. 현직 당대표에 대한 테러란 점에서 유사한 점이 많죠.
먼저 2006년 5월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으로 가보겠습니다. 판결문과 공소장 등에 따르면 박근혜 대표를 피습한 지충호는 다수의 전과와 수감 전력이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평소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씨는 2006년 5월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제4회 지방선거 유세 중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찾아갑니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지씨가 애초 계획한 범행 대상은 오세훈 후보였습니다.
지씨는 오 후보가 연단에 오를 때를 노렸지만, 오 후보가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면서 기회를 놓쳤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확성기를 통해 "박근혜 대표가 오세훈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양화대교를 건너오고 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지씨는 범행 대상을 오 후보에서 박 대표로 변경합니다. 그리고 오후 7시 20분 박 대표가 도착했고, 지씨는 지지자인 척 다가가 문구용 커터칼로 박 대표의 오른쪽 얼굴을 공격합니다.
검찰은 지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김윤권 부장판사)가 사건을 맡았습니다.
2006.8.3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 박근혜 대표 피습 지충호 살인미수 혐의 선고 中 |
재판부 "피고인은 자신의 각 범행으로 장기간의 수형생활을 하게 됐음에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출소 후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고 세간의 주목을 이끌기 위해 한나라당 유력인사에 대한 폭력범행을 계획했습니다. 2005년 12월 무렵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을 폭행했으나 별 효과가 없자 더 극단적인 방법을 모색하다가, 2006년 5월 무렵 지방선거 유세 현장에 참석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에게 상해를 가하는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는바, 여성의 안면을 칼로 베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상해가 오른쪽 귓바퀴 앞면부터 턱선을 따라 오른쪽 뺨에 난 곡선 형태의 길이 11㎝, 깊이 1~3㎝의 안면부 심부열상으로서, 범행 수법이 지극히 악랄하고 상해의 정도 또한 매우 중합니다" "특히 이 사건 흉기 휴대 상해의 범행은 단순한 상해 사건에 그치지 아니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선거운동 기간에 유력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극단적인 폭력범행으로서 많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 질서를 교란하고 올바른 선거 문화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는 중대한 범죄라 할 것인바, 유사 범죄의 재발을 방지할 필요성도 큽니다" |
재판부는 지씨의 테러 행위를 민주주의 질서를 교란한 중대 범죄라고 질타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주장한 살인미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상해 범죄라고 본 것이죠. 목이 아닌 얼굴을 겨냥한 범죄이고, 커터칼을 살인 도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죠.
2006.8.3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 박근혜 대표 피습 지충호 살인미수 혐의 선고 中 |
재판부 "과연 당시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 보건대, 이 사건 범행 직후 피해자 박근혜를 진단하고 안면 수술을 시술한 의사가 수사기관에서 "칼끝이 4㎝ 정도만 턱 쪽으로 더 내려왔으면 경동맥 또는 경정맥을 손상해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당시 현장에서 범행을 목격한 이들이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이 범행 직후 박근혜에게 "죽어" 내지 "민주주의를 위해 박근혜는 죽어야 한다"고 외쳤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진술은 경동맥이나 경정맥이 손상됐을 경우를 전제로 하는 가정적인 판단에 불과하고, 또 목격자 진술처럼 피고인이 범행 직후 위와 같이 외쳤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히 범행 직후 과격한 언사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가 많아 위 진술 만으로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중략) "박근혜의 안면을 가격 부위로 삼아 상해를 가한 것이지 목 부위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보이는 점, 피고인이 범행 도구로 준비한 문구용 커터 칼은 목 부위를 베는 등의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 살인의 도구로서는 다소 미흡한 점, 피고인이 박근혜에게 위와 같이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힌 후 더 이상의 상해를 시도한 바 없는 점 등 기록에 나타난 범행의 동기,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동종 수법의 범행 전력, 준비된 흉기의 종류 및 용법, 공격의 부위와 반복성 유무, 사망의 결과 발생 가능성 정도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에게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박근혜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한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달리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습니다" |
그렇게 재판부는 지씨의 다른 사건 범죄 사실까지 종합해 총 징역 11년(흉기 등 상해죄·공직선거법위반죄 징역 8년, 공갈미수죄 등 징역 3년)을 선고합니다. 지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됩니다.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을 고려하면 이재명 대표를 공격한 피의자는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는 17cm의 칼로 이 대표의 목을 공격했죠. 그 결과 목빗근 위로 1.4cm의 자상이 발생했고, 속목정맥이 손상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속목동맥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수술을 맡은 서울대병원 민승기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목빗근 위로 1.4㎝의 칼로 찔린 자상이 있었다. (칼이) 근육을 뚫고 근육 내에 있는 동맥이 깔려 있었고, 많은 양의 혈전이 고여 있었다"라며 "속목동맥은 정맥의 안쪽, 뒤쪽에 있는데 다행히 동맥의 손상은 없었다. 주위에 뇌신경이나 다른 식도나 기도의 손상은 관찰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재판에서 가리고 판단해야 할 문제지만 현재 피의자 스스로 살인의 고의와 계획 범죄임을 인정하는 진술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 이번 범행 전에 이 대표를 따라다니며 범행을 준비한 정황도 드러났죠. 현장에서 공격 대상을 바꾼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의 피고인 지충호와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美대사 테러범은 살인미수로 징역 12년… "수 회 공격"
2015년 3월 5일 오전 7시 38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선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향한 테러가 발생합니다. 범인은 김기종이었습니다.미국대사 초청 행사가 열린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김씨는 리퍼트 대사에게 접근해 '남북 대화 가로막는 군사훈련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자료를 건넨 뒤 24cm 길이의 흉기를 휘두릅니다.
그는 처음엔 리퍼트 대사의 오른쪽 얼굴을 공격했고, 이후 얼굴과 목 부위를 세 차례 공격하지만 리퍼트 대사가 왼팔로 막습니다. 리퍼트 대사는 얼굴에 길이 11cm, 깊이 1~3cm의 심부열상과 좌측 전완부 관통상, 우측 대퇴부에 길이 12cm, 깊이 1~2mm의 열상을 입었습니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아 부장판사)는 김씨의 살인미수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합니다. 공격한 부위와 여러 차례 찌른 행위가 결정적이었습니다.
2015.9.1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리퍼트 대사 피습 김기종 살인미수 혐의 선고 中 |
재판부 "피고인은 총길이 24cm의 과도를 외투 주머니에 숨기고 커터칼을 호주머니에 소지한 채 들어와 그로부터 약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피해자에게 빠르게 접근해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피해자의 오른쪽 얼굴과 목 방향을 향해 1회 내리찍고, 피해자가 왼팔을 들어 방어하고 주위사람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도 적어도 3회 이상 피해자를 공격했습니다. 피해자는 얼굴과 팔에 중한 상해를 입었고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에 처했습니다. (중략) 피고인이 사용한 과도는 날카로운 흉기로 이를 이용해 사람의 얼굴 또는 목 부위에 중대한 상해를 가하는 경우에 생명에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중략) 위 안면부 심부영상 부위 바로 1cm 내지 2cm 아래로 경동맥이 지나고 있으므로 위 경동맥이 칼에 찔렸다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이 사건 범행 경위 및 동기, 과도의 크기와 용법, 공격 강도, 부위와 반복성 등을 종합해 볼 때 피고인에게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됩니다" |
평소 반전운동을 펼치며 동시에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보여왔던 그는 결국 정치 테러까지 저질렀고 대법원에서 징역 12년이 확정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이었든 간에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며 범행을 저지른 순간부터 그들은 결국 정치 테러범일 뿐입니다.
1945년 해방 직후 이념 대립이 난무하던 시절,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빗발치며 수많은 목숨이 희생됐죠. 그로부터 약 8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가 그 많은 피를 흘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렇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면서 조금이라도 진보했다고 믿었다면 오판이었을까요? 리퍼트 피습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2015.9.1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리퍼트 대표 피습 김기종 살인미수 혐의 선고 中 |
재판부 "피고인은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널리 알리고 관철하기 위한 목적에서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국가의 존립·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내용이나 방식 또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비록 구성원 다수가 반대하더라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내용과 형식을 폭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왔습니다. 이는 남북 분단과 전쟁 위험이라는 어려운 조건 아래에서 우리 사회가 많은 아픔을 겪으면서 함께 만들어 온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에 의해서든, 집단에 의해서든, 국가에 의해서든 부당한 폭력이 어떠한 목적의 수단이 되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고하게 정립돼 있습니다.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우리 사회가 조심스럽게 만들어 온 소중한 질서와 문화에 대해 심각한 공격을 감행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지켜나가고 더 많은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합의를 깨트리는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