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서 카메라 렌탈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수상한 손님을 만났다. 렌탈샵에 있는 고가의 장비를 이용하는만큼 촬영장비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보통의 손님들과는 달리, B씨는 문의하는 말투부터 어설펐다. 대여를 하러 업체에 와서 장비를 점검할 때도 어색한 모습이었다. 수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A씨는 일단 B씨에게 장비를 대여해줬다.
아니나 다를까, A씨의 불길한 예감대로 B씨는 교통사고가 났다는 핑계를 대며 장비를 반납하지 않더니 곧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피해를 입은 A씨가 업계 지인들에게 수소문해본 결과, 이러한 '렌탈 사기'로 피해를 본 업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또 다른 피해를 예방하려 B씨의 인적사항을 렌탈업체 대표들에게 공유했더니, 이미 B씨는 다른 업체에서도 한 차례 사기를 친 전력이 있었고, 때마침 재차 범행을 저지르려 C업체에도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A씨는 C업체와 함께 '작전'을 짰다. 다른 렌탈업체 대표들과 지인들까지 10여 명을 동원해 B씨를 손수 잡기로 한 것이다. '일단 대여해주고, 미행해서 붙잡자'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결전의 날이자 예약 당일인 지난달 29일, B씨는 대여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C업체에 나타났다. C업체 대표는 태연하게 B씨에게 예정된 장비를 대여해줬다. B씨는 장비를 빌려 업체를 나가더니, 수상한 차량에 올라탔다.
B씨를 미행하던 A씨 일행은 곧바로 차량을 덮쳤다. 차에는 B씨 말고도 2명이 더 있었다. A씨 일행이 차량 트렁크를 열자, 렌탈업체들에서 대여한 장비 2~30개가 우르르 발견됐다.
A씨 일행은 이들을 차 밖으로 끌어내 추궁하기 시작했다. 온갖 핑계를 대며 범행을 부인하던 이들과 5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인 결과, A씨는 이들 일당에게 범행을 자백 받고 자술서까지 받아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그날 B씨를 비롯한 '렌탈 사기' 일당 6명을 사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중 이른바 '총책' 3명은 구속됐다.
횡행하는 '렌탈 사기'…수거책·총책 역할 분담
'렌탈 사기' 범행은 분업화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른바 '총책'들은 SNS에 '고액 알바' 모집글을 올려 신용불량자 등 급전이 필요한 2~30대 청년들을 유인해 '수거책'으로 고용한다.
이들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를 보면, 총책이 수거책에게 렌탈 업체를 지정해준 뒤, 특정 촬영장비를 수거책의 명의로 대여해오라고 지시하는 형식이다.
수거책이 장비를 대여해오면, 총책이 전당포에 맡기거나 전자상가에 팔아넘겨 수익을 나눠 가진다. 수익의 2~30% 정도를 수거책에게 수고비로 넘긴 뒤, 나머지는 총책이 갖는다.
또다른 피해업체 대표인 D씨는 "보이스피싱처럼 조직이 있더라"면서 "(수거책들은) 조직한테 장비를 다 넘겨주고 (수거책들은) 그냥 몇십만 원을 받아간다고 했다. 그 다음에 그 보이스피싱 조직은 전당포 같은 곳에 장비를 넘겨서 처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 또한 "렌탈샵에서 빌려가자마자 함께 차량을 타고 구의역 아니면 강변역 테크노마트 쪽에 있는 장물아비한테 가서 바로 판매를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렌탈 사기'로 피해를 본 업체만 최소 10여 곳에 달한다.
피해업체 대표 E씨는 "우리 렌탈샵 대표들끼리 하는 말로는 '1년에 3천만 원 피해본 거면 그래도 선방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면서 "피해 추산금만 하더라도 우리끼리 얘기해보면 딱 이번 시즌에만 4억 정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피해 업체에 대한 구제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수거책이 '실수로 장비를 잃어버렸고 반드시 변상하겠다'며 잠적하는 수법을 쓰기 때문이다. 실제 총책들은 '변상의지를 남기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꼼수'를 수거책들에게 전수해주고 있었다.
현재 피해 업체 10여 곳은 피해 사실을 취합해 함께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찰 또한 정확한 피해 규모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