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불법 구조물을 증축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해밀톤 호텔 대표 등 관련자들이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어서야 첫 법원 판단이 나온 가운데, 남아있는 참사 관련 재판에도 이목이 쏠린다.
2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부장판사는 건축법 및 도로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해밀톤 호텔 대표 이모씨에게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호텔 법인 해밀톤관광에도 같은 액수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호텔 별관에 테라스 등 건축물을 무단 증축한 혐의를 받는 라운지바 프로스트 대표 박모씨는 벌금 100만 원, 라운지바 브론즈 운영자 안모씨는 벌금 500만 원 형을 받았다. 프로스트 법인 디스트릭트에는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월 이씨에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박씨와 안씨는 징역 8개월, 해밀톤관광에는 벌금 3천만 원, 디스트릭트에는 벌금 2천만 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호텔 본관 뒤편에 테라스 형태의 건축물을 불법 증축한 혐의에 대해서 유죄로 봤지만,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가벽을 설치한 혐의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보이지 않아 무죄로 판단했다.
2010년 이전부터 지금의 가벽과 유사한 형태의 가벽이 있었고 가벽이 건물 건축선을 침범해 문제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이씨 측이 건축선을 침범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판결에 대해 '반쪽짜리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이 사건 판결은 해밀턴 호텔의 불법증축물에 관해 9년 동안 과태료만 부과하며 책임을 방기한 용산구청장의 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의미가 있다"면서도 "참사 발생과 피해 확대에 분명한 책임이 있는 해밀톤 호텔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고 짚었다.
이어 "해밀톤 호텔 서쪽 철제 패널 담장은 이태원 참사 특수본 수사 결과에 따라 참사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돼 기소됐다"며 "호텔 서쪽 철제 패널 역시 'T자 거리의 병목현상'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위 소속 김민아 변호사는 "공판부는 처음부터 이 사건을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반영해서 다루기보다 그저 건축법·도로법의 행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둬서 너무 처벌 수위가 낮게 나온 것 같다"며 "다른 (이태원 참사) 재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려가 되기는 한다"고 했다.
이처럼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뒤 396일 만에 참사와 관련된 첫 1심 선고가 나왔지만, 다른 참사 관련 주요 재판들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특히 주요 피의자들은 '참사를 예측할 수 없었다'며 하나같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현재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서 관계자들도 재판을 받고 있다.
박 구청장은 재판 과정에서 핼러윈 데이는 주최 측이 없는 행사이고, 재난안전법상 지자체는 이번 사고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서장은 '사전에 사고를 예측할 수 없었고 사고 당시에도 무전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참사 직후 정보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등 정보라인 관계자들도 보고서를 폐기한 것이 규정에 따른 절차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참사 주요 관련자로 지적되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아직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법정에 서지도 않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 결과가 다른 이태원 참사 판결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최영승 겸임교수는 "이태원 참사 책임의 본질은 해마다 계속 반복된 행사에서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질서를 유지하지 않으면 중대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사전에 알고도 사고 방지 의무를 방치해 참극을 초래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지자체 등의 책임을 묻는) 본질적인 재판에 더 유의해서 봐야 한다"며 "이 판결이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고, 또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