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 위기 신탁사기 피해자 "대통령님, 제 목소리 좀 들어주세요"

오는 17일 명도소송 재판 선고…강제 퇴거 위기 놓여
"신탁회사, 집주인 임대차 행위 사실상 묵인…사기 공범"
"동절기 강제 퇴거는 인권 침해…주택 인도 소송 중단해야"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강제퇴거 위기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박희영 기자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신탁사기 피해자가 전세사기 지원 특별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7일 명도소송으로 당장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신탁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정태운(31)씨는 "15년 열심히 일해서 돈 모아 내 집 마련의 꿈이 코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을 넘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며 "우리 청년들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죽어라 일해서 빚 갚고 있다. 진짜 이렇게 방치할 건가"라고 호소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5개월이 넘었지만, 신탁사기 피해자들은 '피해자 등'으로 분류돼 경공매 유예나 우선매수권, LH 매입임대와 같은 지원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씨는 임대인이 신탁회사에 주택을 맡겨서 아무 권리가 없는 상태로 임대차 계약을 맺은 신탁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다. 임대인은 신탁을 통해 1차적으로 금융기관에서 주택 가치의 60% 가량의 대출을 받고, 2차로 세입자로부터 전세금을 받아 챙겼다. 정씨와 같은 피해자가 해당 주택에서만 총 17가구, 39명으로 이 가운데 7세대는 신혼부부다. 보증금 피해 금액만 15억 2천만 원에 달했다.

신탁주택의 형식적 소유자는 신탁회사가 되기 때문에 원칙상 신탁회사가 대외적인 소유권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신탁회사가 동의하지 않은 임대차 계약은 무효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정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정씨는 지난 3월 임대인의 세금 체납 등으로 주택에 대한 경공매 절차가 시작됐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도 신탁주택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신탁주택이라는 사실은 경공매 절차에 돌입하자 신탁회사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강제퇴거 시키기 위한 명도소송을 제기하면서 알려졌다.  

신탁주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등기소에 직접 방문해 등기부에 첨부된 신탁 원부를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나 법률인에게도 생소한 신탁제도를 세입자들이 사전에 인지하고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신탁주택 전세사기는 무권리자인 임대인이 신탁계약을 위반한 사안이기 때문에 계약 위반자인 임대인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 그 피해는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연대 발언에 나선 전세사기·깡통전세 시민사회대책위 이원호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21년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에 특히 동절기 강제집행을 금지하도록 민사집행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며 "동절기에 사람을 집에서 내쫓는 것은 가혹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강제 퇴거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유엔의 사회권 조약과 사회권위원회는 규정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이미 1995년 국회 비준을 통해 사회권 규약에 가입했다"고 덧붙였다.

또 "모든 법적 행정적 조치를 다 하고 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거해야 한다면 안정적인 주거 대책을 마련한 후에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임대차 계약이 무효라며 명도소송을 통해 세입자들을 쫓아내려는 신탁회사가 임대인이 수년 동안 체결해 온 임대차 계약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방치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운영위원장인 김태근 변호사는 "신탁주택에 대한 임대차 계약이나 임대료와 관리비 수령, 관리비를 통한 임대주택의 공용 부분 청소·수리 등의 관리 업무는 모두 위탁자인 기존 집주인이 담당하고 있었다"며 "기존 집주인인 위탁자가 이 사건 주택에 대해 이와 같은 임대차 행위와 주택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신탁회사가 수년 동안 모를 리 없다. 신탁회사가 사실상 전세사기의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그럼에도 신탁회사의 사전 승낙을 받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규정을 근거로 신탁회사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자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탁 사기의 전형적인 구조"라며 "기존 집주인이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이자를 연체하고 신탁회사가 금융기관을 대신해 세입자들에게 주택 인도 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대법원은 신탁회사의 편을 들어주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사기 특별법은 신탁사기 피해자에게 저리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피해 세입자가 전세금 1억~2억원 가량을 받지 못해 쫓겨나는 상황에서 무슨 돈을 빌려 주택 마련할 생각을 할 수 있겠나"라며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들처럼 신탁사기 피해자들 또한 주택 인도 소송이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신탁회사를 방문해 명도소송 연기를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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