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민간인 희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스라엘을 공개 지지해온 미국의 입장이 난처해진 가운데 중국이 다시한번 중재자 역할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이번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순회 의장국을 맡게 된 중국은 휴전 결의안 채택과 자신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두 국가 방안' 이행을 강하게 밀어붙일 계획이다.
안보리 순회 의장국 지위 적극 활용 "결의안 통과 시킬 것"
중국 외교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1일 사이드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중국이 이번달 유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이라는 점을 거론한 뒤 "우리는 모든 당사자, 특히 아랍 국가와 조율을 강화하고 정의를 주장하며 합의를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문제 원인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합법적인 권익이 회복되거나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두 국가 방안'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국가 방안'은 지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경계선을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만들어 이스라엘과 공존하게 만들자는 중국의 구상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2일 정례 브리핑에서 "가자지구 정세는 이번달 안보리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중국은 안보리 순회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 당사국들, 특히 아랍 국가들과 조율을 강화하며 정의를 주장하고 합의를 모을 것"이라며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다.
안보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과 2년마다 교체되는 10개 비상임 이사국으로 구성되며, 이들 이사국이 매월 돌아가며 순회 의장국을 맡는다.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과 관련한 안보리의 휴전 논의는 미국의 반대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은 하마스 제거를 위한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을 명시하지 않은 일반적 휴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법적 효력을 가지는 안보리 결의안은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동시에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통과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이번달 순회 의장국을 맡아 휴전을 위한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1일 "결의안에 휴전과 국제법 준수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반대하면 안보리 결의안 통과가 불가능하지만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공습으로 민간인 피해가 크게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을 사전 경고도 없이 공습했는데 이를 두고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끔찍하고 소름 끼친다"고 평가했다. 또, 25일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하루 평균 400명의 어린이가 죽거나 다쳤다며 "이런 것이 '뉴노멀'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특히, 유엔 인권사무소는 2일 "이건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불균형적(과도한) 공격들이란 점에서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이 커지자 그동안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했던 미국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고, 이스라엘 측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한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전쟁 이후 이스라엘을 두번째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일 "가자의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해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고 취해야만 하는 구체적 조처들을 얘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중국 관영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3일 "거부권을 갖고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마음을 바꿔 책임 있는 국가로 행동하기 시작해야 유엔 안보리가 가자 지구에서 효과적으로 휴전을 가져올 수 있는 구속력 있는 결의안을 내릴 수 있다"며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미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탄력받는 '두 국가 방안'…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이와함께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두 국가 방안'에 미국이 일정부분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의 중재 역할이 이전 보다 탄력을 받게됐다.
블링컨 장관은 2일 '두 국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것이 안전하고 민주적인 유대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이 가질 자격이 있는 국가를 보장하는 최선의,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두 국가 방안'을 제시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동등하게 안전하게 존엄과 평화 속에서 나란히 살 자격이 있다"라고 밝혔다.
여기다 이번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간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양국 정상간 '두 국가 방안' 등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 종식을 위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 역시 높다.
다만, 이번 전쟁을 통해 하마스를 격멸시키겠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이 워낙 강경한데다,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미국내 반발 역시 예상된다.
따라서, 안보리 순회 의장국 지위를 바탕으로한 중국의 중재가 안보리 결의안 도출과 '두 국가 방안' 이행 등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