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도 눌러도 오르는 물가…소주도 햄버거도↑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하이트진로의 맥주와 소주 제품들. 연합뉴스

올해 내내 이어져 온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협조해 오던 외식·식품업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 기조를 따라가던 업계에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며 가격 조정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도 연쇄적 인상 움직임은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31일 소주 제품의 출고가를 인상했다. 오는 9일부터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 제품의 360ml 병 제품과 1.8리터 미만 페트류 제품의 공장 출고가가 6.95% 올라간다. 제로슈거인 진로이즈백의 공장 출고가도 9.3% 인상된다. 수치로는 병당 100원 미만의 인상이 이뤄지게 된다.

이날 하이트진로는 테라, 켈리 등 맥주 제품 출고가도 다음달 9일부터 평균 6.8% 올리기로 했다. 앞서 오비맥주가 지난달 11일부터 카스, 한맥 등 주요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한 데 이어 하이트진로도 맥주 제품 가격을 올린 것이다.

소주와 맥주 부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가격 조정을 시행함에 따라, 다른 업체들에서도 조만간 비슷한 수준의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주류 인상 이전에는 원유 가격 상승에 따라 흰우유와 아이스크림·치즈 등 유제품에서 100원 단위 가격 조정이 이뤄졌다. 외식업계에서도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맥도날드는 2일부터 빅맥 등 13개 메뉴의 가격을 평균 3.7%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수치로는 300~400원가량 인상이다. 맘스터치도 닭가슴살을 원료로 쓰는 버거 4종의 가격을 5%가량 인상했다.

서울 LG생활건강 화장품 매장. 연합뉴스

화장품 업계에서도 가격 인상이 단행됐다. LG생활건강은 1일부터 숨, 오휘, 빌리프, 더페이스샵의 일부 품목 가격을 4~5% 인상한다. 숨의 시크릿 에센스 EX(100ml)가 기존 9만5천원에서 10만원으로 오르는 등 3천~5천원 수준의 가격이 올라간다.

정부 기조와 반대로 가게 된 기업들은 지속적인 원가부담 상승으로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연초부터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 가격이 10.6% 인상되고 신병 가격은 21.6%나 인상됐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 서민층 부담과 정부 입장을 고려해 인상률과 품목도 최소화했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인상 품목을 최소화한 만큼 이번 가격 조정 이후에도 세트 메뉴 절반 이상은 시간에 관계없이 4천~6천 원대에 만나볼 수 있다"며 고객 부담을 줄이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이번 인상으로는 원부자재 비용 상승분을 메꿀 수가 없는 지경"이라며 "수치만 놓고 보면 더 올리는 게 맞는데, 정부 눈치를 봐야하니 요새는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격 인상 릴레이를 마주한 정부는 관련 업계와 더 자주 만나며 '물가안정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간담회에서 나오는 발언들은 한층 수위가 강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소비자·외식 단체장들과 만나 "외식업계는 전사적인 원가 절감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공개적으로 버티기를 주문했다. 같은달 20일에는 식품업계와 만나 일부 원료 가격 상승에 편승한 '부당한'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한 맘스터치 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업계에서는 정부가 서민층의 체감이 높은 식품·외식 물가에 민감한 점은 이해하지만, '팔목 비틀기'의 효과는 점점 미미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인상을 결정한 기업들도 모두 정부 기조에 맞추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감내하기 힘든 기업들이 계속 늘어날 텐데 점점 정부의 인상 자제 요청도 힘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물가 안정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복합적인 원인 해소 없이 기업의 팔목만 비트는 방식으로는 물가 안정이 될 수가 없다"며 "기업들에게 가격 조정을 강요하기보다 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체감되는 정책을 제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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