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으로 인해 올 여름 전력 소비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역마진 구조 속에서 한국전력의 적자 폭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한전은 임직원들의 '희망퇴직 방안'을 추가 자구안에 담으며 내부 쇄신을 선제적으로 단행하겠다는 계획이지만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없이 한전 정상화는 요원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총부채 200조원, 누적 적자만 47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적자 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사실상 국내 전력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이 판매하는 소매 전기요금보다 발전사에서 사오는 도매 전기요금이 더 높아 손해를 보는, 이른바 '역마진 구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마진 구조 속에선 특히 전력 판매량이 많을수록 손해가 더 커진다는 게 문제다. 생활 필수재에 해당하는 전기나 가스, 수도 등은 적자를 이유로 판매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량이 늘어날수록 한전의 재무 상태도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올해 여름은 역대급 폭염으로 인해 주택용 전력 사용량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력통계 월보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주택용 전기 판매량은 9377기가와트시(GWh)로, 그간 여름과 겨울을 모두 포함해 역대 최고치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동안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은 333킬로와트시(kWh)로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요금도 올랐다.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원자재 가격 폭등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전기요금을 kWh당 28.5원가량 인상했다.
4인 가구 기준 한 달에 427kWh 상당 전기를 사용했을 경우, 올해 전기요금은 약 20% 상승한 약 8만500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한전은 분석했다. 가정용과 일반용 전력 사용량은 증가한 반면,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경기 부진으로 인해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2만4703GWh로 전년 동기 대비 2.1% 줄었다.
전력 사용량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요금의 '역마진 구조'가 지속되면서 한전은 존립이 흔들릴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4분기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당에선 한전의 자구책이 선제 조건이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4분기 전기요금 인상안 결정을 앞두고 한전 내부에선 임직원 희망퇴직 방안이 추가 자구안에서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희망퇴직은 아직 확정된 방안은 아니다"라며 "이달 초 김 사장이 간담회를 통해 우회적으로 추가 자구안 속에 구조조정이 담길 수 있다고 언급한 것 아니겠냐"라고 했다.
한전이 이번에 희망퇴직을 실시하게 되면 창사 이후 두 번째 인력 구조조정에 해당한다. 앞서 한전은 지난 2009년 420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진행한 바 있다. 희망 퇴직자들에 대한 퇴직금은 한전 간부금 인사 약 5700명이 반납할 올해 임금 인상분 등에서 조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한전 정상화를 위해 소폭이더라도 4분기 요금 인상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의 실효성에 대해선 재무적 효과와 요금인상 전 여론 달래기 등 측면에서 이견이 있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요금 상승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얻으려면 한전도 내부 구조조정을 통해 원가상승률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며 "4분기 요금을 조금이라도 올려서 다가올 충격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적자 규모가 50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희망퇴직 방안이 한전의 재무개선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원자재가 폭등할 때 소매요금을 올리고, 낮아질 때 요금을 다시 신속히 낮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