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푸틴 '전략적 협력관계 전환' 선언…한반도 신냉전 구도 강화

김정은 "깨지지 않은 전략적 협력관계로 전환하는 중요 계기"
푸틴 "김정은, 할아버지 아버지 선대지도자의 길 따르고 있어"
전략적 협력관계 아래 무기·군사·경제 등 각종 분야 협력 강화
정상회담 마친 김정은 방러단, 극동 주요 도시 방문 예정

'북러 정상회담' 악수하는 김정은·푸틴.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기자회견도 없었다. 양국의 무기거래와 군사협력 등 민감한 내용의 합의 사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두 정상의 서명이 필요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담을 전후해 나온 두 정상의 발언들을 통해 회담에서의 논의사항을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회담종료 뒤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를 하며 푸틴 대통령과 '한반도와 유럽의 정치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중요한 시기에 이뤄진 러시아 방문이 "북러 관계를 깨지지 않는 전략적 협력관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회담 성과에 대해 "전략적 협동과 지지 연대를 가일층 강화해 나가는 데 대하여 만족한 견해의 일치를 봤다"고 평가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관계 전환'이라는 표현은 김 위원장이 하루 전인 12일 새벽 러시아 하산역에 도착해서 한 발언과 통한다. 그는 하산역 환영행사에서 "4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한 것이 북러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당과 정부의 중시 입장을 보여주는 뚜렷한 표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한미일 공조강화의 한반도 상황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주도의 지원에 대응해 북러 양국 관계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적 협력관계로 전환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구축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방문한 김정은. 연합뉴스

이런 발언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선대 지도자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화답하며, 구소련 시절 밀접했던 양국 관계로의 복원 방향을 내비치기도 했다. 미국에 대한 북한과 러시아의 공동대응으로 한반도 안보환경을 둘러싼 신 냉전 구도가 더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이처럼 전략적 협력관계로의 전환이라는 큰 틀의 합의 아래 양국의 무기거래, 군사협력, 경제협력 등 각 분야의 협력 방안이 논의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먼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북한이 포탄과 탄약 등 재래식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패권을 주장하고 팽창주의자의 환상을 키우는 악의 무리를 징벌하고 안정적인 발전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신성한 투쟁을 벌이는 러시아군과 국민이 분명히 위대한 승리를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전쟁 승리에 대한 김정은의 확신 표명은 재래식 무기 등 군사적 지원을 러시아에게 하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쇼이구 국방장관이 지난 7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재래식 무기 거래와 함께 제의한 북러 합동훈련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이 답을 줬을 수도 있다.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두 정상이 무기 거래를 논의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공개되거나 발표돼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이웃국가로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회담에서 군사기술 협력 문제도 논의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서두르지 않고 모든 문제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시간은 있다"고 말했다.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군사협력은 시간을 갖고 해 나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그 다음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무엇을 받느냐이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이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왔다"며,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반갑게 맞이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북한은 올해 두 차례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다.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의 현대화에 매진하고 있는 김정은의 입장에서 러시아가 자랑하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거침없는 답변은 북한의 협력을 대가로 위성 분야에서의 지원 가능성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평화적인 목적의 우주 개발과 이용이라는 명분으로 위성발사 부문에서 기술지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회담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식량과 에너지 등 경제협력도 폭넓게 논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회담 뒤 방송 인터뷰에서 "두 정상이 어떤 핵전쟁 위험도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핵보유국 인정 여부나 핵 협력 논란을 차단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한편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친 김 위원장은 앞으로 전투기 생산 공장 등이 있는 다른 지역들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민간·군사 장비 생산 시설이 있는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를 비롯해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방문할 것"이라는 게 푸틴 대통령이 설명이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1170㎞가량 떨어진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는 전투기를 생산하는 유리 가가린 공장, 군함을 건조하는 조선소 등이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의 시찰이 예상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태평양함대 사령부 등을 찾는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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