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오염수 방류, 도구로 전락한 '비도덕적 이성' 드러내"

정치철학자 김만권 교수 EBS '클래스e' 강연 눈길
20세기 지성 하버마스 '의사소통적 합리성' 소개
오염수 방류 강행 진단…"체계가 생활세계 식민화"
"올바른 실천은 언제나 올바른 인식에서 나온다"

도쿄전력은 지난 21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방류를 위한 설비를 외국 기자들에게 공개하면서 폐로를 추진 중인 원자로 1~4호기의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 연합뉴스
"현재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이유는 결국 오염수 보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이 작동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국가와 시장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강행하는 이유를 20세기 최고 지성으로 손꼽히는 독일 출신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1929~)의 이론으로 뜯어본 강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선보인 EBS 강연 콘텐츠 '클래스e' 2532회에서는 정치철학자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극단의 시대: 20세기 정치철학사'라는 주제 아래 8번째 이야기로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들려줬다.

김 교수는 "이성중심주의를 대표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현재 수장인 하버마스는 이성을 '도구-전략적' '도덕-실천적' '미학적' 세 영역으로 나눈다"며 "하버마스가 인간 해방을 위해 특별히 강조했던 영역이 바로 '도덕-실천적' 영역"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렇게 이성의 '도덕-실천적' 측면이 '도구-전략적' 측면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성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이성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성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하버마스는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특히 "하버마스는 이성의 근원을 '개인 의식'에서 '일상 언어'로 옮기는 일을 한다. 이성의 원천이 개인 의식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소통하는 말과 행위 속에 있다고 봤던 것"이라며 "이는 하버마스가 새로운 이성관을 구축하는 시도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성이 개인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자기 이익 추구 도구로 전락"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흔히 "이성의 힘은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다" "자기 이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은 "이성의 근원이 인간 개인 의식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이성이 개인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버마스는 여겼다.

결국 하버마스는 인간 개인 의식 안에 머무르는 이성의 합리성이 지닌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합리성의 근원을 새롭게 마련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하버마스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의 유효성에서 합리성의 근원을 찾았다. 하버마스는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공유하고, 최종적으로는 서로 합의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을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김 교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엄청나게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이성적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행위자, 바로 타자들이 요구되기 때문"이라며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특정한 자기 이익의 실현이나 전략적 목적의 달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타자와 함께하고, 이해하고, 합의하는 노력에서 나온 만큼 도덕적 측면을 가진다고 봤다"고 역설했다.

"도구성 중시 '체계', 의사소통적 합리성 '생활세계'에 침투·잠식"


지난 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오염수 투기 반대 촉구 결의대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
특히 하버마스는 지금 근대 세계가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지배적인 곳과 근대 세계의 문제가 된 '도구적 합리성'의 지배를 받는 곳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도구적 합리성의 지배를 받는 곳을 '체계',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곳을 '생활세계'라고 부른다.

김 교수는 "'체계'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국가와 시장"이라며 "이는 근대 국가가 탄생하면서, 관료주의가 생겨나면서 비대해졌고, 화폐가 통용되는 교환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적 합리성'이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가와 시장으로 이뤄지는 '체계'의 목표는 복잡해지는 사회 환경에서 효과적인 통제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 내 행위자들이 (국가와 시장의) 효과적인 통제와 관리 아래서 합목적적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체계'를 지배하는 합리성의 본질은 언제나 효율성과 도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생활세계'는 우리가 보편적 언어 사용을 통해 우리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서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가 서로 이해한 내용을 공유하고, 다시 그걸 갖고 합의에 이르기 위한 의사소통이 중심이 되는 사회 영역"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듯 효율성과 도구성을 중시하는 '체계'가 의사소통적 합리성 영역인 '생활세계'에 침투, 잠식해 나가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데 있다. 하버마스는 이를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고 표현한다.

"시민사회운동에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


김 교수는 "이러한 식민화가 근대 세계의 병폐인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이유로 하버마스는 '생활세계'가 '체계'의 식민화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리차드 번스타인(1932~2022)은 하버마스의 이론을 미국에 소개하면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은 환경·반핵·여성운동과 같은 새로운 사회 운동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한다'고 썼다. 바로 시민사회 운동이 소통적 합리성과 맞닿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소통적 합리성은 상호 이해와 공유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말과 행위의) 이성적 사용의 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공익을 목표로 하고 공공성을 목표로 하고, 효율성을 넘어서 정당성을 찾아야할 것"이라며 "바로 시민 사회 운동은 도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의 활동과 달리, 그것을 넘어 우리 국내 시민, 그리고 그것을 넘어 모든 보편적인 세계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활동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최근 국가와 시장의 도구적 이성에 저항하는 소통적 합리성을 만드는 시민사회운동에 대해서 시민들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 운동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며 "이는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체계(국가와 시장)가 생활세계(일상적 삶)를 식민화 하기 때문에 (소통적 합리성이 결여돼)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오염수 방류,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 작동"


특히 김 교수는 "지금 현재 하버마스 이론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사례"라며 말을 이었다.

"현재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이유는 결국 오염수 보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이 작동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국가와 시장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한 이후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느라 이 문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 교수는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단체는 바로 '그린피스'라고 부르는 글로벌 시민사회 단체"라며 "이는 자신들 이익과 상관없이 지구 시민들의 건강, 그리고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활동으로,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지구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활동을 펴면서 주변 국가들에게 이(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인간의) 말과 행위를 상호 이해를 (다지기) 위해 쓸 때 이성의 소통적 능력이 작동하고, 그것이 이성의 도덕적 영역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버마스는 하고 있다"며 "오늘 강의는 '올바른 실천은 언제나 올바른 인식에서 나온다'라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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