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개 중 서너 개만 정상…올해처럼 재미 못 본 적 없당께"
며칠간 퍼붓던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한 20일 전남 순천시 월등면 유평마을.
총 면적 130ha에 176개 농가가 있는 이곳은, 예년 같으면 한창 수확을 했어야 했지만 농민들은 나무에 달린 복숭아 하나하나 상태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움푹 파인 자국들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50년 만의 역대급 장마가 지나간 탓에 성한 복숭아를 솎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른여 개 중 내다팔 만한 것은 불과 서너 개.
장맛비를 이기지 못하고 낙과한 자리에 남아있는 텅 빈 포장지는, 수확만을 기대하며 애지중지 복숭아를 키우던 농민들의 허탈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순천 월등복사골영농조합법인에 따르면 월등면에서만 복숭아 조생종 30%, 중생종 70~80%, 만생종 30%가 피해를 입었다.
월등복사골영농조합 장봉식 대표는 "장마가 한 달 이상 지속되면서 당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 장마는 빗줄기가 굵어서 과실에 상처를 낸 것도 큰 문제였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현행 농작물재해보험 보상기준도 요즘 같은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제도를 변경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지난 봄에는 이상고온으로 조기 개화됐다가 4월에 들이닥친 기습 한파로 다시 냉해를 입어 복숭아 열매 자체가 절반 이상 열리지 않았다.
이후 지난 6월 15일부터는 장마가 휩쓸고, 그나마 붙어있던 과실에 병충해가 생기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40년째 복숭아 농사를 했다는 박미래(60)씨는 "이날 아침에 노란 바구니 25개 정도의 양을 수확했는데 보통 이 정도면 4kg짜리 상품 50여 박스가 나온다. 그런데 요즘은 20박스에 그친다"며 "워낙 불량품이 많기 때문이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40년 동안 이렇게 피해를 입은 적이 세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며 "올해는 인상된 인건비에 상자값도 안 나오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해마다 열렸던 월등 복숭아 축제도 올해는 판매 행사로 대체됐다. 이마저도 최상급이 나오지 않아 농가들이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봄에는 냉해, 여름에는 역대급 장마에 병충해까지 3중고를 겪고 있는 농민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장마 소식에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을지 밤잠을 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