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이것만 하루종일 보고있는 거예요."
지난 7일 경기 군포 새가나안장로교회에서 김은자(68) 권사가 서류 뭉치를 보여주며 말했다. 김 권사 앞에는 서울과 평택, 화성, 부산, 광주, 김해 등 전국 경찰서에서 보낸 수사협조 공문이 쌓여 있었다.
새가나안교회는 2014년부터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출생 미신고 영아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이곳으로 공문을 보내 베이비박스에 남겨졌던 아이들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공문이 들어오지만, 베이비박스 담당자는 김 권사 한 명뿐이다. 최근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영아유기 의심 사건이 늘어나면서 김 권사 홀로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다.
김 권사는 "영아유기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서에서 매일 연락이 오는데, 우리는 수기로 서류를 작성해둬서 일일이 문서를 확인해야 한다"며 "하루를 겨우 버티고 다음날 오면 경찰서에서 보낸 서류가 또 쌓여 있다"고 말했다.
불안감 떠는 친모들…"저 처벌 받나요"
"여기에 아기를 두고 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 것 같나요?"
김 권사는 "이곳에 오는 친모는 미혼모나 도저히 아이를 키울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이를 버렸다는 시선보다는 수많은 고민 끝에 생명을 해치지 않고 힘겹게 찾아온 사람들로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재 경찰의 베이비박스 수사는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친모를 범죄자의 영역에 놓고 수사한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의 수사는 친모와 담당자와의 '상담 여부'에 맞춰져 있다. 상담을 하고 인계할 경우엔 적어도 일방적인 유기로는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대상' 신분이다 보니 친모들 사이에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수년 전 이곳에 아기를 맡겼던 친모가 김 권사를 찾아오기도 했다. 경찰이 베이비박스 친모들도 처벌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겁이 났기 때문이다.
김 권사는 "몇년 전 미성년자일 때 아이를 낳고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친모가 있었는데, 최근 교회를 찾아왔다"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수사 대상이 되는 순간 일을 시작도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각자 사정에 따라 온 사람들이고, 지금은 가정을 꾸린 친모들도 있다"며 "하지만 경찰이 친모들에게 연락을 하고, 당시 상황을 따져 묻다 보니 공포심이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도 김 권사에게 걸려온 휴대전화 너머로는 "○○년에 아이를 맡긴 친모와 상담은 했나요?"라는 경찰의 질문이 들렸다.
베이비박스에서 가족으로…"영혼 살아나는 걸 본다"
김 권사는 베이비박스가 '영아유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에도 맞서고 있다. 일각에선 아이를 인계하는 방법이 간단하고, 아이가 사망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친모들이 쉽게 낳고 쉽게 베이비박스를 찾는다고 주장한다. 최근엔 영아유기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베이비박스 존치에 대한 찬반여론이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김 권사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고 잘라말했다. 이곳 교인 상당수가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위탁해 양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은경(43) 집사도 2018년 베이비박스로 찾아온 아이를 5년째 키우고 있다. 서류상으론 '동거인'이지만, 국 집사에게는 마음으로 낳은 '막내 아이'다.
국 집사는 "베이비박스로 왔다는 게 너무 안쓰러웠는데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직접 키우기로 결정했다"며 "가정위탁 교육을 받고 범죄경력 조회까지 다 거쳐야 위탁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는 "그 작은 영혼이 살아나는 걸 보면 키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중학생 자녀 2명도 같은 마음으로 막냇동생을 돌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 집사는 "우리 아이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고 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를 가족으로 위탁해 키우는 가정이 늘었다"며 "유기를 조장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생명을 살리는 통로"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새가나안교회 베이비박스로 145명의 생명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일시보호소를 거쳐 위탁가정으로 가거나 전국의 보육시설로 보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