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구급차 뺑뺑이' 끝에 숨진 10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경북대병원 등 응급의료기관 4곳에 행정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해당 병원들은 응급환자에 대한 중증도를 분류하고 환자를 수용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원을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29일부터 지난달 7일까지 소방청·대구시와 진행한 합동 현장조사 및 서면조사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응급의학, 외상학, 보건의료정책, 법률 등 전문가 11명이 참여한 2차례 회의 결과도 반영됐다.
행정처분 대상은 대구파티마병원,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4곳이다.
앞서 지난 3월 19일 오후 2시 15분경 대구시 북구 대현동의 한 골목길에서는 A(17)양이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출동한 구급대는 A양을 동구 소재 대구파티마병원으로 옮겼지만, '전문의가 없다'며 수용을 거부당했다.
이후 경북대병원과 계명대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거의 모든 상급종합병원에 연락을 취했지만 받아주겠다는 곳을 찾지 못해 2시간을 길바닥에서 전전했다. 결국 A양은 오후 4시 30분쯤 달서구 종합병원에 인계되는 과정에서 심정지 상태가 됐다.
A양이 최초 내원한 대구파티마병원(지역응급의료센터)은 당시 근무 의사가 A양의 중증도를 분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필요해 보인다며 타 병원으로의 이송을 권유했다.
합동조사단과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응급환자의 주요증상, 활력징후, 의식 수준, 손상기전, 통증 정도 등을 고려해 중증도를 분류토록 한 응급의료법 제31조의4 및 동법 시행규칙 제18조의3을 위반했다고 평가했다.
파티마병원은 구급대원이 2차로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응급진료 수용을 의뢰했을 때도 같은 이유를 들어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상 처치'가 가장 필요한 환자에게 엉뚱한 이유로 환자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이송자로부터 응급환자 수용능력 확인을 요청받은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기피할 수 없게 한 응급의료법 제48조의2를 어겼다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A양이 두 번째로 찾은 경북대병원에서는 구급차가 먼저 진입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의사가 '중증외상이 의심되니 권역외상센터에 문의하라'고 권했다. 경북대병원은 권역 응급의료센터·외상센터를 함께 운영 중이다.
하지만 권역외상센터도 두 번에 걸친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수용 의뢰를 거부했다. 이유는 '다른 외상환자 진료 및 병상 부족'이었다. 당국의 조사 결과, 실제로는 센터에 가용병상이 있었고 진료 중이었던 환자 상당수도 경증환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병원임에도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외상센터 내에서 의료진 간 소통이나 환자 인계 등은 전무했다.
다른 병원들도 비슷한 난맥 상황을 보였다. 계명대동산병원은 '외상환자 수술이 시작돼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했고,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신경외과 의료진이 부재 중'이라며 A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이들 4곳에 △병원장 주재 사례검토회의 및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응급실 환자 대상 원내 시설(중환자실·입원실·수술실) 및 인력 우선 배분계획 등 재발방지대책 수립 △119 구급대 전화상 수용력 확인요청에 대한 수용 프로토콜 수립 등의 시정명령을 내렸다. 의료진 응답 대장에 대한 전수 기록·관리 및 주기적 환류 등도 주문했다.
경북대병원은 외상환자 내원 시 권역응급의료센터-외상센터 간 협진 지침과 24시간 양방향 소통체계 등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대구가톨릭대병원에도 중증응급 뇌질환 담당 전문의가 모두 자리를 비워 이틀 이상 공백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재발 방지책을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시정명령은 처분일로부터 6개월 이내 이행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해당 기관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중단된다(경북대병원 2억 2천만 원·대구파티마병원 4800만 원 등). 대구파티마병원과 경북대병원은 각각 3600여만 원과 1670만 원의 과징금도 물게 됐다.
함께 조사대상이 됐던 삼일병원(지역응급의료기관)과 바로본병원(응급의료시설), 영남대병원(권역응급의료센터), 나사렛종합병원(지역응급의료기관)은 법령 위반 사실이 없거나 정황상 그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중증외상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를 제공할 역량 자체가 안 되거나 가용 여력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 김은영 응급의료과장은 "개별 의료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구 지역에서 다양한 응급의료 주체 간의 연계 협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며 "지방자치법 제18조 1항에 따라, 대구광역시에도 제도 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 응급의료 자원조사 후 결과를 반영한 이송지침 마련 △이송체계 정비를 위한 지자체·119 구급대·응급의료기관 간 협의체 구성 및 이송지연 사례에 대한 정기적 회의 운영 △응급의료 전담인력 확충 및 협의체(지자체·소방·의료기관) 확대 운영 등을 권고했다.
특히 복지부는 응급환자 수용 곤란을 고지하는 프로토콜에 그 판단 기준·절차를 담는 동시에 미수용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구체적 의무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또 경증환자가 응급실에 몰려 응급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역량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는 여건 조성 방안을 검토한다.
아울러 이송 중 구급대원이 주기적으로 정확하게 환자 상태를 평가할 수 있게 구급대 지침을 개정하고 역량 교육도 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