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구제, 국회서 본격 논의…법안 검토보고서 보니

연합뉴스

최근 세입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진 대규모 전세 사기에 대한 입법 논의가 본격화했다. 하지만 여당과 정부가 주도하는 법안과 야권의 법안 사이 시각차는 물론, 법안에서 피해자나 문제적 임대인의 정의가 불명확하다거나, 공공의 재정 부담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지적이 나오는 등 실제 법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관문이 남은 상황이다.
 

與 "피해자에 우선매수권"…"'소수 임차인 피해' 사례도 같이 대우해야"

 
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정부‧여당 안으로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안'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임대보증금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이 상정‧논의됐다.
 
우선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의 법안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공매 절차에서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주고, 이를 행사하지 않는 임차인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사업자에게 피해 주택의 매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법안의 '임대인 등'이나 '피해자'의 정의‧요건에서 문제가 지적됐다. '임대인 등'의 정의 중 '다수 임대인의 배후에 있는 동일인'이나 '(해당) 동일인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조직'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논의를 위한 전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송병철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다수'는 몇 명 이상을 의미하는지, '배후에 있는' 등 표현이 어떤 사실관계나 법률관계를 의미하는지 불명확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피해자 요건에서 '다수의 임차인에게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의 변제를 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란 대목은 '소수'의 임차인에게 이같은 피해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겠다는 의미란 점에서 "삭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보고서는 "관련 피해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보호 필요성이 달라지는 건 아니고, 피해자의 수에 따라 차별을 할 정당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 측이 "정부가 피해자 범위를 협소하거나 모호하게 정해 '피해자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점과도 연결된다.
 
보고서는 다만 법안의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택 우선매수권과 관련해선 "의무가 아니라 임차인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며, 해당 주택에 대해 선순위 담보물권자가 있고 임차인이 경락인에 대해 대항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한 여러 선택지 중 하나에 해당해 타당하다"고 밝혔다.
 

野 "공공에 채권을"…"민사 채권에 공공 개입? 근원적 고민 필요"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논의를 위한 전체회의에서 김민기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창원 기자

야권의 법안에 대해선 다른 사기 피해 사건에 대한 형평성 문제나, 공공의 재정적 부담 문제에 대한 지적이 두드러졌다.
 
우선 민주당 조오섭 의원의 안은 임대인이 임차보증금 반환을 하지 않을 때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임차인의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넘겨받아 임차인이 간접적으로 채권을 변제받는 효과를 얻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전문위원의 보고서는 "공공기관이 개인의 민사 채권의 집행을 담보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바람직하다면 어느 범위까지 담보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근원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며 "현행 사법 체계상 채권 집행 또는 추심의 기대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공공기관이 채권을 양수해 채권자의 재산권을 공적 재원으로 대신 보장하는 제도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같은 방식이 "국가 또는 공공기관에 대해 크나큰 재정적 부담을 가져올 우려가 있으며, 계약 당사자 중 일방 또는 쌍방이 고의로 채무불이행을 일으키는 등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세 보증금 '사고'에 대한 대위 변제를 치르는 HUG의 보증보험제도에서 연간 채권 회수 금액이 대위변제 금액에 크게 못 미치는, 즉 대신 갚아준 보증금에 비해 임대인으로부터 받아낸 금액이 턱없이 부족해 당기순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예로 들기도 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지적이 나왔다. 해당 법안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 공공이 보증금 채권 및 보증금 미반환 주택을 매입하고, 사업을 위탁받은 LH‧HUG‧KAMCO 등 공공기관이 임차인의 임차보증금 반환 채권을 넘겨받도록 해 임차인이 임대인으로부터 채권을 변제받는 효과를 간접적으로 거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보고서는 보증금 채권의 매입이나 보증금 미반환 주택의 매입 등 제정안 주요 내용 곳곳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의 재정적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사기 피해 구제가 시급한 만큼 국회는 다음 달 1일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을 병합 심사해 2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할 계획인데, 법안의 최종적인 수위는 결국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방향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공공의 피해 변제에 대해 "다급하고 앞이 캄캄한 (피해자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국민들이 건강한 상식과 형평의 질서에 봤을 때는 조금 무리가 따르는 얘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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