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속살 훤히 드러난 투명유리에 갇힌 용산 대통령실


용산 대통령실의 국가 안보실을 미국 정보기관이 감청한 사실은 충격적이다. 미 언론보도 대로라면 미 정보기관은 한국의 외교안보 사안을 손바닥 금 보듯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김성한 전 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간 유출된 대화 내용은 날 것 그대로 생생하다. 얼마나 생생했으면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미국의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 요구에 "노심초사(grappled) 했다"고 보도하겠는가.
 
대한민국 안보사령탑의 핵심인 두 사람 간 대화 내용이 실시간으로 이렇게까지 감청된 것 이라면 사안의 폭발력은 짐작할 수 없을 지경이다. 비단 우크라이나 건만 한국 대통령실을 속속들이 들여다 봤다고 볼 수 없다. 한일 외교 사안은 물론 미국을 상대로 한 우리 정부의 반도체법, 미 인플레법(IRA) 등 대책도 미국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식은땀을 흘릴 지경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감청 과학기술은 나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실이 도감청에 제대로 대비 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더욱이 용산 대통령실은 주한 미군기지와 일백 여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또 용산은 주한미군의 중심지였다. 대통령실을 급하게 옮긴 탓에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대비가 허술하게 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도.감청 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은 국회에서 이미 여러 번 제기됐다. 
 
문제는 도.감청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또 어디에 설치되고 누가 운영하는지 조차 우리 정부가 깜깜이 속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해법도 막연하다. 정부가 미국에 사실 관계와 함께 언제,어떻게 얼마나 감청을 했는지를 요청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다. 하지만 대통령실 대응은 국민적 우려와 달리 미적지근 하기만 하다. 대통령실은 과거 전례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대응책을 보겠다고 한다. 
 
미국은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 정상에 대한 감청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미국의 가까운 친구나 동맹국 정상의 통신 내용을 감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미국 대통령 선언은 허언에 불과한 것이 됐다. 설마 정상 간 통화가 아니라고 우길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정보 도·감청에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미국은 얼마 전 자국을 침입한 중국 정찰 풍선을 무력을 동원해 격추시켰다. 중국은 기상 관측 풍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정찰 의혹 행위에 대해 강력 조치를 취했다. 자국 정보 보호에 일체의 관용이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 동맹을 넘어 혈맹이라 일컫는 한국 대통령실을 이 잡듯 샅샅이 감청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전직 고위 외교관들에 따르면, 세계 각국은 도감청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음지의 영역인 도.감청을 봉쇄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기밀을 다루는 부서마다 이른바 '기밀실'을 운영한다고 한다. 기밀실은 밀폐된 특수 공간이다. 창문도 문도 일반문이 아니고 금고문처럼 열고 닫는 '해치(hatch)'로 만들어져 있을 정도이다. 일반 부서도 아니고 대한민국 안보 총사령탑인 국가안보실이 감청에 뚫려 대화 내용이 전 세계 sns에서 떠돌게 만든 것은 국가 망신 중의 망신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부는 미국 정부에 감청 관련 사실을 설명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음지'에서 진행된 일도 '양지'로 나오게 되면, 더 이상 '음지의 질서'로 묻힐 수 없다. 이번 사안은 반드시 '양지의 질서'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속살 그대로 훤히 비추는 투명 유리 속에 갇힌 대통령실을 보며 국민들이 얼마나 난감해 하고 있는지 대통령실은 인식이나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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