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2시간인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 이상으로 확대해 한 주 총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으로 늘리는 게 핵심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정부 내 혼선이 일고 있다.
특히, 그 혼선의 정점에 윤석열 대통령이 자리를 잡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14일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보완 검토 지시' 사실을 전했다.
윤 대통령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노동부에 주문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발표와 함께 당장 당일부터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돌입하는 등 강력한 추진 의지를 과시했던 노동부는 아주 곤혹스럽게 됐다.
'대통령이 장관 발표 일축' 지난해 6월 상황 재연?
이정식 장관이 지난해 6월 23일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로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을 발표했을 때의 '악몽'이 떠오를 만한 상황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 장관 발표 바로 다음 날 출근길에 "보고받지 않은 내용이 언론에 나왔다"며 노동부 장관의 중대 발표를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번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은 명실상부한 정부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이었다.
노동부 발표 이후 '초장시간 집중 노동' 우려와 비판이 빗발쳤음에도 권기섭 차관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외려 "실근로시간 단축에 더 유효하다"며 개편방안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급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尹 정부 우군 여긴 'MZ세대'도 "개편방안 시기상조"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둘러싼 대통령과 엇박자는 주무부처인 노동부뿐 아니라 국무총리 사이에서도 노출됐다.
한덕수 총리는 14일 국무회의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획일적인 주52시간 규제를 노사 합의로 성수기, 비수기 등을 고려한 유연하고 합리적인 제도로 전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가 '유연하고 합리적'이라고 높이 평가한 개편방안을 대통령은 "보완 검토하라"고 지시한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의 보완 검토 지시는 정부 개편방안에 현 정부가 이른바 '노동개혁'에 강력한 우군으로 여겼던 MZ세대까지 반발하는 등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MZ세대 노조 모임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지난 9일 발표한 의견문에서 "연장근로 단위 확대는 시기상조"라며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국회 과반 민주당 "재검토가 아니라 폐기가 정답"
노동부는 대통령의 보완 검토 지시에 일단 "국민의 이해와 공감대 속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정적 여론 확산에 대통령이 급제동을 걸고 정부 내 혼선까지 부각되면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은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할 전망이다.
반대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개편방안 철회 압박 수위를 한껏 고조시킬 태세다.
민주당은 "재검토가 아니라 폐기가 정답"이라며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한 것이면 다행이나 어물쩍 물러서는 시늉에 그치면 더 큰 저항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의도대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이뤄지려면 입법예고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 국회 통과가 필수적이지만, 그 가능성은 더욱더 희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