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최근 5년간 344명이 나갔다"…판사가 부족하다 ②명예에 속고, 돈에 울고…'박봉판사' 안 한다는 '김광태' 변호사들 (계속) |
법관들의 이탈이 심화되면서 법원 내부에서도 이를 상쇄하기 위한 각종 궁여지책을 궁리하고 있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돈보다 명예'는 옛말이 되어버렸고 법관 증원은 먼 얘기다.
특히 다양한 법조 경력을 쌓은 우수한 중견 법조인을 법원에 들이자는 법조 일원화 정책과 1심과 2심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법관인사 이원화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법원 안팎에서는 점점 커지고 있다.
박봉에, 공무원 수준 연금…"법관의 꿈은 사치"
"서울에 3년 있다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지방에서 몇년을 머물지 모르잖아요. '법정 안에서만큼은 왕'이라는 것도 다 옛날 이야기고요."1986년생 김광태(가명)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김앤장·광장·태평양'으로 꼽히는 대한민국 굴지의 로펌에 다니는 10년차 변호사다. 어린 시절 미국드라마 '명판사 에이미'를 보고 자란 그는, 한때 판사님을 꿈꿨었다. 2016년 변호사시험(5회)에 합격한 김 변호사는 그 꿈을 접은 지 오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봉사정신이나 명예욕만으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귀향길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변호사 연봉으로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고물가 시대에 "법관의 꿈은 사치"라고 했다.
전·현직 법관이나 대형로펌 변호사들은 열악한 처우에 노후 보장도 되지 않는 형편을 판사 이탈의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2027년부터는 법조 경력 10년 이상부터 법관직에 도전할 수 있는데, 중견 판사의 연봉(9호봉)은 610만여원. 판사의 경우 1년9개월마다 1호봉씩 승급한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중견판사의 연봉이 '삼성전자 초봉'에도 미치지 못한다. 거기다 대형로펌에서 10년을 견뎠으니 '어쏘 변호사' 시절처럼 혹독한 업무 환경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다. 즉, 대형로펌 10년차 변호사에게 '경력 신입 법관' 자리는 보수만 깎이고 명예는 그닥 없는, 매력적이지 못한 선택지라고 한다.
경력 법관들의 노후안정성 역시 현저하게 떨어진다. 법원행정처 정책연구용역심의위원회가 지난 2018년 한국법경제학회에 연구용역으로 검토한 '법조일원화에 따른 법관보수 및 연금제도 연구'에 따르면 법조일원화 이후 임용되는 법관들의 경우 연금액의 소득대체율은 13.8%~26.5%에 머문다. 가입연수에 따라 수령액이 결정되는 만큼 10년을 외부에서 일하다 온 경력법관이 적은 연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의 보장 수준이 공무원연금보다 열악한 상태에서, 법관 전용 연금을 따로 신설하자고 하는 것 역시 현실성 없는 해결책이다.
무너진 승진코스, 늘어난 지방살이
유인 요소도 없지만 동기 부여 요소가 사라진 것 역시 '판사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견판사들의 숨통을 틔워줬던 '부처 파견'도 김명수 코트가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법원 관계자는 "8~11년차에 가는 해외파견을 다녀오면 은퇴 전까지 주구장창 판결만 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법관인사 이원화 도입으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가 폐지됐다. 이에 대해 10년차 판사 상당수는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씩 성취해가는 기쁨에 익숙한 판사들에게 한 계단씩 올라가는 맛(?)이 사라졌다"고 한다. '재판연구관·행정처 심의관→고법 부장판사→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가 사실상 무너진 것.
이는 법원으로서도 심각한 손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과거에는 재판연구관을 거친 판사들은 고법 부장판사, 법원장을 바라보며 법원에 남고 소위 고법 부장판사를 물 먹은 판사들이 떠났지만, 이제는 이 구조가 전복되다시피 했다. 이에 대해 한 고위법관은 "예전에는 전교 20~30등이 나가다가 지금은 1~10등이 (로펌으로) 나가는 꼴"이라고 자평했다.
10년차 판사들의 지방 근무 시기와 자녀 교육 시기가 맞물리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이탈 요인이다. 기본적으로 판사는 입직 후 첫 10년 동안 서울-수도권-지방 근무를 한다. 부장판사가 되는 16년차부터 다시 지방법원에서 3년을 보낸 뒤 서울·수도권에서 3년을 근무하고 다시 지방으로 간다. 그 뒤 16년차부터 25년차 사이에 지방근무를 3년 더 한다. 초임 부장판사들은 "연봉은 변호사 동창들의 반토막에, 내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인데 처음 가는 시골에서 무슨 교육을 하겠느냐"고 하소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승진이라는 마지막 버팀목까지 사라졌으니 이 시기를 버틸 이유를 찾지 못하고 법원을 떠나게 된다는 것.
그런데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인사를 나눠 하게 되면서 이같은 난점이 더욱 부각되는 모양새다. 지법 부장판사 대신 고법 판사로 선발되면 서울고법에 머물 수 있을줄 알았는데, 5년 뒤에 지방 고법 판사로 3년 간 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승진제 폐지로 고법 부장판사가 돼서 법원장을 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고등법원 관계자는 "지법에서 합의부 부장을 해보지 않고 고법 판사로 갔는데, 지방 고등법원에서 몇 년을 있을지 알 수 없게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편으로는 "합의부 부장, 재판연구관을 거치지 않은 판사가 평생 항소심을 전담하게 된다"며 "근무평정을 근거로 고법 판사를 선발한다고는 하지만, 복잡다단한 사건을 해보기도 전에 너무 일찍 '평생 진로'를 정해버리니 법원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더 커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법·지법 판사들 사이 위화감이 형성되는 것은 물론, 재판연구관 등 주요 보직에 역량 있는 고등 판사를 배치할 수 없고 반대로 지법 부장을 고등 항소심 자원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