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참사' 추모공간의 입지를 놓고 유족과 정부·지자체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유족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원한다. 참사 현장 자체이자, 이미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물결이 다녀간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반면 정부는 범위를 확장해 용산구 내 건물까지 제안한 상태다.
2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핼러윈 참사 추모공간 설치 장소를 두고 유족 측과 정부는 아직 협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오전 방문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참사 현장의 추모공간은 정리된 상태였다. 피해자들을 기렸던 조화와 메조지 등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과 이태원광장 시민분향소로 옮겨졌다.
추모공간은 철거됐지만, 시민들의 추모 흔적은 아직 남아있다.
이태원역에서 1번 출구로 나가는 지하철역 내 벽면에는 여전히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메모가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참사가 났던 골목 벽면에는 추모 메모지를 보호하기 위한 투명 천막도 설치됐다. 작은 꽃다발과 LED 촛불도 놓여 있었다.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러 온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참사 현장을 찾은 용산구 주민 50대 김모씨는 "벌써 10번은 방문했을 것"이라며 "운동 삼아 동네 산책을 하면서 매번 들른다.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계속 오더라"고 말했다. 한 시민이 "합동분향식은 어디냐"고 묻자 김씨는 "녹사평역으로 가야 한다. 걸어서 10분 거리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연말 휴가라 이제야 처음 와봤다"며 "(추모공간 장소는) 상징성이 있으니 멀지 않은 곳에 (설치)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추모공간이 이곳에 설치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23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우리 아이들을 구조하고, 함께 희생자를 추모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유가족들은 상인, 시민단체와 함께 희생자를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공간, 아픈 기억이 아닌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족들은 이태원 상인들과 함께 추모공간 정비와 인근 상권 회복을 위한 협약서를 작성해 '이태원역 1번 출구를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대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추모공간이 마련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인근 상인과 주민들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녹사평역의 추모 분향소를 옮기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청받았다"며 "서울시에서 이태원역에서 도보로 10분 내외 거리에 떨어진 곳으로 용산구 내에 민간 건물 2~3군데를 찾아서 (유족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상인이나 임대하는 분들 입장에서 반대가 좀 있어서 그런 부분이 감안된 것으로 안다"며 "(서울시 제안에 대해) 아직 유족 측이 답변을 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핼러윈 참사 유가족 협의회 관계자는 "장소는 아직 논의 중이며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대형 참사 이후 추모공간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을 두고도 갈등은 장기간 지속됐었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2019년 4월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다가 광장 리모델링으로 철거됐다. 이후 작년 11월 서울시의회 앞으로 이전했으나 철거를 둘러싸고 유족 측과 서울시의회의 갈등은 여전하다.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조성될 예정인 '4·16 생명안전공원'은 참사 5년 만에야 건립이 확정됐다. 봉안시설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단원고 학생들의 교실을 재현한 '4·16 기억교실'이 있는 '4·16민주시민교육원'도 부지 선정 문제로 2020년에야 개원했다.
추모공간이 참사 현장이 아닌 엉뚱한 곳에 설치돼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은 참사 현장에서 6km쯤 떨어진 양재시민의숲 한쪽 구석에 마련됐다. 참사 직후에는 삼풍백화점 자리에 추모공원을 조성하자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땅값 떨어진다'는 주민들의 반발로 묵살됐다.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서초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