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현실화 로드맵 사실상 폐기…'땜질 처방' 그칠까

국토부, 시세 대비 공시가 현실화율 2020년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는 수정안 제시
文정부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 도입한 시점으로 회귀…사실상 로드맵 폐기
"공시가격 올리면 조세 저항 우려 커져" vs "세 부담 줄인다고 마음대로 바꾸면 안돼"
"유형마다 적용 기준 다르고 실거래 반영 못하는 '깜깜이' 시세 기준 개선해야" 근본적인 제도 개편 주문도

서울시내 아파트 모습. 황진환 기자

정부가 내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릴 것으로 예상돼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사실상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공시가격 하향 조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의 대응에 그치지 않고 시세 대비 공시가격 현실화 제도와 실거래가격 간의 근본적인 괴리를 다시 정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공시가 현실화율 2020년으로 후퇴…사실상 文정부 공시가 현실화 계획 폐기


공동주택 가격구간별 현실화율 추이 (단위:%). 국토교통부 제공
국토교통부는 지난 22일 2차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공청회를 열어 2023년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는 현실화 계획 수정안을 발표했다.

수정안에 따라 내년에 적용되는 시세 대비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공동주택 기준으로 평균 69.0%로, 올해 71.5%보다 더 낮다. 가격대로 나눠보면 △9억 원 미만 68.1% △9억 원 이상~15억 원 미만 69.2% △15억 원 이상 75.3%다.

국토부는 이번 수정안을 토대로 곧 공시가격 현실화율 수정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비록 공청회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내놓겠다지만, 정황상 이번 수정안을 그대로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서 지난 4일 1차 공청회에서 연구 용역을 맡았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고, 기존 현실화 계획을 1년 유예하자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물리치고 재검토를 추진하면서 공공연히 '동결 불가' 입장을 드러냈다. 특히 국토부 원희룡 장관은 2차 공청회 바로 전날인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세재정연구원에서 제안한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더 강화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의중을 드러냈다.

국토부가 선택한 '2020년'이라는 시기는 문재인 정부가 현재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도입하기 시작한 첫 해다. 즉 기존의 시세 대비 공시가격 현실화율 인상분을 폐기하고, 상황을 초기화한 셈이다.

3주도 채 지나지 않아 '동결안'에서 '하향 조정안'으로 바뀐 배경에 대해 전문가 자문위는 크게 3가지 이유를 꼽았다. △공시가격이 시세를 초과하는 '역전' 문제 발생 △역대 최대 규모라는 올해 종합부동산세 대상인원 △실거래지수의 역대 최대폭 하락 등이다.

최근 역대급 거래 침체 속에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실거래가격도 급락하자 일부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는 공시가격보다 실거래가격이 낮은 사례도 발견될 정도다. 이런 가운데 기존 현실화 계획대로 공시가격을 올리면 '조세 저항'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또 그동안의 부동산 가격 인상의 후폭풍으로 종부세 대상 인원이 122여만 명에 달하는 등 부동산 관련 세 부담이 과도하게 크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현실화율 하향 조정에 찬반 엇갈려…"실거래 반영 못하는 근본적 한계 개선 집중해야" 지적도


조주현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명예교수가 22일 서울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이처럼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을 사실상 폐기하도록 입장을 정리한 데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임병철 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세제 완화 관련 내용을 공약했는데, 여야 협의 과정에서 막히면서 과감한 규제 완화를 못하고 있다"며 "그 결과 공시가 현실화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우회해 세금 부담을 대신 낮췄다고 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도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하는 시세와 공시가격 간의 차이가 충분해야 시세 변동이 있어도 문제가 적게 발생하는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70% 이상 올리니 '역전'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며 "게다가 공시가격을 1년에 한 번 발표하니, 작년에 정한 공시가격보다 올해 시세가 내리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도시문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세 부담을 낮추자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공시가격은 다른 문제"라며 "주택가격을 제대로 매기고, 부동산 가치를 공평하게 측정하자는 개념에서 나온 제도인데 이것을 아예 되돌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공시가격과 시장 가격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부분을 조금씩 개선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서 법제화한 것 아니냐"며 "정부가 바뀌었다고 로드맵을 마음대로 바꾸면 안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공시가격이 종부세나 재산세는 물론 67개 행정 제도의 기준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급격히 인상되면 시민들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주장에 대해 강원대학교 정준호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 정도면 정부가 제공하는 일종의 인프라와 같은 제도라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부동산 세금이 문제라면 공정시장가액비율만 낮춰도 되는데 정부가 지지층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제도를 바꾸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른바 '공시가-시세 역전' 현상에 대해서도 최은영 소장은 "통계적으로 평균에서 크게 벗어난, 매우 특이한 아웃라이어(이상점) 사례일 뿐"이라며 "전국의 수많은 집 중 강남의 특정 아파트의 극단적인 거래 사례를 놓고 우리 모두의 공시가격을 다시 낮추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의 현실화 로드맵이 폐기되면서 현실화율을 높여서 얻었던 조세 평등 효과가 고스란히 뒤닙어진다는 점이다. 올해와 비교할 때 내년 현실화율은 9억원 미만은 1.3%p, 9억원 이상~15억원 미만 및 15억원 이상은 각각 5.9%포인트씩 낮아져서, 9억 원 이상의 비싼 아파트가 더 많은 혜택을 입게 된다.

내년의 부동산 시장이 다시 반등할 경우, 정부가 낮춘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금 부담을 과도하게 낮춰 자칫 과거와 같은 부동산 과열 사태가 반복될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미세 조정할 것이 아니라, 대조 대상인 '적정 시세'를 투명하게 설정하도록 제도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성달 정책국장은 "공시가격 제도는 시세 반영률도 낮을 뿐 아니라 부동산 유형별, 가격별, 지역별로 반영률이 다 다르다"고 한계를 짚고, "현실화율 목표치만 제시했고, 실질적으로 (실거래 반영을) 달성됐는지 현실화율 자체에 대한 검증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준호 교수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실거래가격이 아닌, 적정 시세가 기준인데 정작 이 '적정 시세'를 어떻게 정해서 얼마나 실거래를 반영하는지 여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적정 시세가 실거래가격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알 수 없다면 공시가격의 비율만을 따져서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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