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양재동 SPC 본사 2층 회의실. 평택 제빵공장 사망 사고와 관련해 허영인 SPC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였다.
임원들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선 허 회장은 마이크 앞에서,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가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도 벗지 않은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죄'의 말은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또 "평소 직원들에게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며 사고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였던 허 회장이 이번엔 검찰이 겨눈 칼 끝에 섰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8일 SPC그룹 본사와 계열사 사무실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회계 자료, 내부 감사 자료 등을 확보하는 등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허영인 그룹 회장의 사무실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검찰은 SPC그룹이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2세들이 보유한 SPC삼립의 주식 가치를 높이려고 조직적으로 삼립에 이익을 몰아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에 따른 조치다. 당시 공정위는 SPC 계열사들이 판매망·주식 저가 양도 및 통행세 거래 등의 방식으로 삼립을 부당 지원했다며 허 회장 등 경영진과 파리크라상, SPL, 비알코리아 등 계열사 3곳에 과징금 647억 원을 부과하고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는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최고액이었다.
지난달 황재복 대표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검찰은 조만간 허 회장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평택 제빵 공장 사망 사고와 관련한 수사도 동시에 진행중이다.
경찰은 여직원 사망 사고가 발생한 SPL 강동석 대표이사 등을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 성남지청도 제빵기사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하고, 승진 과정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차별한 혐의로 피비파트너스 황재복 대표와 전·현직 임원 4명, 사업부장 6명, 중간관리자 17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제빵왕으로 불리던 SPC에 소비자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평택에 이어 성남시 샤니 공장에서 잇따라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SPC는 소비자들의 '분노'를 마주해야 했다.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SPC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매출에도 타격을 입었다.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15~31일 포켓몬빵 매출은 고 이전인 9월 28일~지난달 14일에 비해 10%가량 감소했다.
불매운동 여파에 가맹점주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파리바게트 점주 A씨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불매 운동 여파를 실감하고 있다"며 "당장 크리스마스 케이크 매출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기업에서도 SPC제품 불매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과 한국 GM 부평공장은 SPC 삼립 빵을 간식으로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립 빵 대신 초코파이나 롯데제과 빵 브랜드로 교체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과 소비자에게 외면받기 시작하면서 "소비자에게 사랑받고 사회에 기여하는 프랜차이즈를 만들겠다"던 허영인 회장의 올해 신년사는 '빈말'이 됐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과 기업이 특정 기업의 제품을 기피하는 현상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SPC가 살아나려면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