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이태원 압사 참사를 두고 야당의 공세가 수위를 더해가자 여당이 역공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윗선 책임론에는 구체적인 말을 아끼면서도, 경찰 지휘체계를 겨냥해 비판하는 한편 대형사고에 대한 검찰의 수사 역할을 강조하며 '검수완박'을 조준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대응이 이번 참사의 본질과 벗어나 있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이태원 참사 닷새 만인 지난 3일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이번 사고의 첫 번째 원인으로 "용산경찰서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점"을 들며 구체적인 책임 주체로 일선 경찰서를 겨냥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의 거취를 묻는 말엔 "어제 경찰 감찰 조사가 진행됐고, 여러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과 진상 규명이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이같은 경찰 책임론에 무게를 더했다. 주 원내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책임이 있는 용산경찰서장이 적시에 인책되지 않은 데 의문을 갖고 있었다"는 한편 "지난 정권 동안 경찰이 너무 정권과 밀착해 본연의 업무에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도 말씀드린다"는 지적까지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휘 책임이나 정치적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며 '꼬리 자르기' 논란엔 선을 그었지만, 일차적인 책임 소재를 일선 경찰서나 지휘라인 일부에 두면서 그 윗선인 이 장관이나 윤 청장 등의 거취를 두고는 결단 시기 등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피한 것이다.
경찰 책임론은 받아들이되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장관 등의 거취에 대해선 천천히 시간을 둘 수 있다는 판단이다. "112 녹취록 공개 후 분노한 여론을 당내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통령실에서도 당연히 다음 수순을 고민하고 있을 텐데, 당에서 대통령실에 장관 거취 등을 과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은 맞지 않다고 본다"(국민의힘 초선 의원)는 해석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이미 이 장관과 윤 청장의 책임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면서 사실상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됐는데, 이를 지도부가 제대로 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미 당내에서도 이 장관 등 거취 문제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팽배한데, 당 지도부조차 눈치를 살피느라 이를 대통령실에 적극적으로 전하거나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여당은 나아가 야당의 '국정조사' 카드에 이른바 '검수완박' 비판으로 응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수완박법을 바로잡는 게 먼저"라며 "70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형 비리, 권력형 비리를 수사해온 검찰의 손발을 묶어두고 진실을 규명하자면 누가 믿겠냐. 경찰이 제 식구 수사하는 사법 체계를 그대로 둘 것이냐"고 역공에 나섰다.
전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경찰의 '셀프 감찰' 우려에 관한 질문에 "검수완박 법률 개정으로 수사 개시에 한계가 있다"고 답하고, 같은 날 '참사 관련 질의 요구'를 두고 파행을 빚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간사인 정점식 의원이 같은 취지로 검수완박을 겨냥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같은 여권의 대응이 이태원 참사의 본질적인 원인을 묻기보단 오히려 또 다른 논란만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당내 한 의원은 "검수완박이 왜 이 사안에 등장하는지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개정에 걸리는 시간 등 현실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문제와 안 맞는 엉뚱한 해결 방식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며 "가장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할 이 장관에겐 말을 못 하고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