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지킨다"…신당역 사건 후 여성들 호신용품 구매 '붐'

'젠더 폭력 더는 남의 일 아냐'…사회안전시스템 불신 반영 지적도

황진환 기자

2년간 한 남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한 경험이 있는 자영업자 강모(32)씨는 최근 '신당역 사건' 보도를 접한 직후 호신용 경보기와 최루 스프레이를 샀다.

강씨는 "피해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호신용품을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며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도 이런 흉악한 일이 벌어지는데,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수년간 스토킹하던 동료 역무원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살해한 전주환(31·구속)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여성들이 호신용품을 사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역마저 안전하지 않을 수 있고, 순식간에 일이 벌어지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직장인 권모(29)씨도 한동안 두고 다녔던 호신용 전기충격기를 신당역 사건 이후 집을 나설 때마다 챙겨나온다.

평소 차고 다니는 스마트워치에는 그동안 쓰지 않았던 'SOS' 기능도 다시 활성화했다. 버튼을 세 번 누르면 미리 설정해둔 긴급 번호로 위치와 구조 요청 메시지가 간다.

권씨는 "성범죄 같은 여성 대상 범죄 사건이 매일 뉴스에 나오고, 최근에는 신당역 사건까지 터지면서 몸을 지킬 만한 도구 없이는 불안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용산구 일대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30대 '캣맘' A씨는 아예 무기류인 '삼단봉'을 구매했다.

A씨는 "보통 사람도 많고 가로등도 밝게 켜진 공원에서 밥을 주기 때문에, 지나가던 남자들이 고양이 밥을 준다는 이유로 위협해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며 "하지만 신당역 사건을 보니 공공장소라도 안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트위터와 여성 회원들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국가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 "계속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꼭 (호신용품을) 구매해야겠다", "호신용품을 사 직장 사람들, 친구들에게 돌렸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호신용품의 종류와 장단점, 사용법 등을 자세하게 소개한 글은 많게는 수만 회 리트윗됐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젠더 폭력이 잇따르면서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든 언제든 어디서든 닥칠 수 있는 위험으로 인식하게 됐다"며 "일상과 관계가 안전하지 않고 시스템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 보호 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현상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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