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를 빌려준 것처럼 속여 100억원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고, 이를 통해 불법 대출한 자금으로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며 요양급여 약 350억원을 가로챈 의혹을 받아온 의료기기 전문업체에 대해 대검찰청이 재기수사를 명령했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고등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재고돼야 한다고 본 셈이다.
특히 이 사건은 검찰이 최초 무혐의 내린 것을 경찰이 별도 인지를 통해 수사에 착수, 약 2년간 수사한 끝에 검찰 결론을 뒤집고 '기소의견'을 달아 송치한 것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불법 대출 혐의만 기소하고 사무장병원 운영 혐의에 대해서는 또다시 불기소 결정을 내렸고, 고검 역시 항고를 기각했다.
그런데 이후 별도 진행 중이던 민사 사건에서 대법원이 해당 병원에 대해 '사무장병원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판단하면서 '반쪽·부실 기소'라는 비판이 일었다. 형사도 아닌 민사 재판 증거만으로도 그 같은 판단이 나온 셈이라 검찰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기소조차 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국 대검이 재기수사 명령을 내린 만큼 결론이 바뀔지 주목된다.
대검, 서울중앙지검·서울고검 결론과 달리 '재기수사' 명령
1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검찰청은 의료기기 전문업체 ㄱ사의 회장 A씨와 대표 B씨, A씨의 손녀이자 ㄴ병원의 병원장 C씨의 사무장병원 운영 혐의(의료법 위반)에 대해 재기수사를 명령했다. 재기수사란 처음 사건을 맡은 검찰청의 상급청이 추가 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다시 수사를 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말한다.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11일 A씨, B씨와 또 다른 병원장 D씨 등을 조세범처벌법위반 및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들은 수십억원대 의료기기를 실제로 빌려주지(리스) 않았음에도 빌려준 것처럼 속여 총 120억원의 허위 의료기기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금융사로부터 140억원가량을 불법 대출한 혐의 등을 받는다.
문제는 이를 수사했던 경찰이 이들이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한 종합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운영했다는 혐의(의료법 위반)에 대해서도 함께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이 이 부분은 '불기소' 처분했다는 점이다. 사무장병원이란 의사나 의료법인이 아닌 개인이 의사를 고용해 병원을 운영하는 형태로, 현행법상 불법이다.
당시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병원이 수년간 부정수급한 약 350억원의 요양급여에 대해 환수 조치를 시도했는데, 검찰의 불기소 결정으로 결국 중단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에 사건 관계자가 항고했지만 올해 3월 서울고검 또한 항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한 달 만인 올해 4월, 해당 사건 관련 별도 진행 중이던 민사 재판에서 대법원이 해당 병원에 대해 '사무장병원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반전을 맞았다. 형사도 아닌 민사 재판 증거만으로도 그 같은 법원 판단이 나왔는데,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법원 판단을 받아보려고 조차 하지 않은 셈이라 '반쪽·부실 기소'라는 비판이 일었다.(관련기사 : [단독]檢 무혐의 뒤집은 警, 결국 기소 檢…'부패완판' 반대 사례)
끈질긴 수사 끝에 검찰 결론 뒤집은 경찰…경찰청 포상
특히 해당 사건은 검찰이 약 4년 전 한 차례 '혐의없음' 처분한 것을 경찰이 별도로 수사해 결론을 뒤집고,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1년여간 결론을 내리지 않더니 두 차례 무혐의 처분했다. 최근 대검이 이를 뒤집는 취지의 재기수사 명령을 내리자 '결국 애초 경찰 수사 결과대로 결론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사건은 ㄱ사와 불법 대출 등을 공모했던 병원장 D씨가 2017년 11월 최초 대전지검에 자수 형식의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여기엔 D씨가 ㄱ사와 공모해 벌인 100억원대 불법 리스 대출과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사실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사건은 서울동부지검으로 이관됐고, 약 8개월 만에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이렇게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경찰 수사로 반전을 맞는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2019년 3월 별도 첩보를 입수, 약 20개월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차례에 걸친 압수수색과 통신·계좌 추적 등을 통해 이들이 불법대출로 확보한 자금을 통해 ㄴ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운영했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요양급여 약 350억원을 부정 수급한 정황까지 포착했다.
이외에도 경찰은 당시 ㄱ사가 대출을 받기 위해 금융사에 제출한 자료와 추후 서울동부지검에 무혐의를 주장하며 제출한 자료 중 일부가 다른 사실을 포착, 검찰 무혐의의 근거가 된 자료 일부가 조작됐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이에 경찰이 증거인멸 등을 이유로 핵심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법원에 청구하지 않고 반려했다.
결국 최초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됐다면 요양급여 수백억원이 불법으로 새나가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D씨가 최초 대전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한 시점은 경찰이 파악한 이들의 사무장병원 운영 시작 시점으로부터 불과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경찰청은 해당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관(경위)을 지난 6월 '2022년 경찰청 올해의 공무원'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경찰청은 매년 전국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경찰관·행정관·주무관 중 30명 내외를 선발하는데, 해당 수사에 대한 포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