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단독]8500억 빚 탕감 후 100억대 주식투자…몰락한 재벌의 수상한 부활 ②[단독]'반지하 월세' 회장님, 8천억 탕감후 유엔빌리지로 이사 ③[단독]'8천억 탕감후 백억 주식투자' 회장, 가족 명의 부동산·법인 수두룩 (계속) |
갑을그룹 박창호 전 회장이 2012년 회생으로 채무 약 8500억원을 탕감 받은 뒤, 100억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사들여 현재 한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사실이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드러나면서 자산을 숨겨 놓고 회생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갑을그룹은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몰락한 바 있다. 이후 박 전 회장에게도 수천억 채무가 생기며 본인 명의로 경제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박 전 회장이 회생 전 은닉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자산은 애초 어디에서 온 걸까.
박 전 회장의 자금 출처를 추적한 결과 박 전 회장이 20여년 전 갑을그룹 몰락 당시에도 가족 등 명의도 부동산을 구입하는 등 개인 재산을 은닉했던 정황이 새롭게 포착됐다. 당시 채권단의 가압류를 피하기 위해 자산을 빼돌려 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부인 명의로 여러 법인의 설립 자금을 대기도 했는데, 이 법인들은 오늘날 박 전 회장이 한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최초 주식 구입도 이들 법인들 명의로 이뤄졌고, 오늘날 박 전 회장의 특수관계사로서 지분을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박 전 회장이 해당 법인들을 차명으로 운영해 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회장은 그룹 위기 '미리' 알았다…'분식회계' 지시
26일 CBS노컷뉴스 취재와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실 자료를 종합하면 90년대 초반 국내 계열사 15개, 해외 계열사 10개 등을 이끌며 연매출 1조원을 웃돌 정도로 크게 성장했던 갑을그룹은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었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무리한 해외 사업 진출 등 규모만 커졌지 내실은 빈 깡통에 불과했는데, 대부분 차입을 통한 사세 확장에만 치중했던 탓이다.
위험 징후는 1994년부터 나타났다. 이듬해 1월 '1994 회계연도' 가결산 마감 결과 갑을그룹의 핵심 회사 ㈜갑을의 자산이 약 2464억원, 부채가 약 2586억원, 자본은 약 59억원, 당기순이익은 약 마이너스(-) 126억원으로 적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박 전 회장 등 경영진은 이익이 실현된 것처럼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회계 담당 팀장은 재고자산 약 560억원 상당을 허위 계상하고, 매출원가 약 144억원을 과소 계상함으로써 자산이 약 3205억원, 부채가 약 2586억원, 자본이 약 619억원에 이르고 당기순이익은 약 18억원의 흑자가 난 것처럼 허위의 재무제표를 작성했다.
이 같은 '분식회계'는 1997년까지 연달아 이어졌고, 허위 재무제표를 믿은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그룹에 수천억대 대출을 계속해서 연장·실행해 줬다. 하지만 그룹의 부실한 자본 상태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맞으며 그룹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1998년 7월 14일 (주)갑을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 업체로 선정된다.
그룹 몰락 직전 가족 명의 부동산 구입·법인 설립 시작
문제는 위기가 감지된 시점부터 박 전 회장이 부인 최모씨와 세 딸에게 부동산을 증여하거나, 최씨와 딸 등 가족 명의의 부동산이 새롭게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부인이 설립 자금을 댄 법인들도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 등에 따르면 부인 최씨는 1996년 6월 경기도 양평의 별장 부지 약 200평을 구입, 그곳에 2001년 2층짜리 단독주택을 짓는다. 2001년 11월에는 인근 농지 약 54평을 추가로 구입하기도 한다.
이어 최씨는 2002년 9월 서울 서초동의 50평형대 고급 아파트를 구입했고, 2007년 12월 최씨와 둘째딸 공동 명의로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의 전용면적 73평짜리 최고급 연립주택을 구입했다. 당시 둘째딸의 나이는 만 24세였는데, 거래 가격은 약 32억원이었다. 현재 이 연립주택은 여전히 이들 명의이고 박 전 회장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매매가는 약 6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전 회장은 1998년 1월 부인에게 서울 성북구 성북동 대지 약 160평을 증여하는가 하면, 같은 달 2월 세 딸에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임야(산) 총 4만여평을 나눠서 증여하기도 했다. 이들 토지는 현재도 각각 부인과 세 딸 명의로 돼 있다.
부인 최씨가 설립 자금을 댔거나 최대주주로 있는 법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도 1998년부터다. ㈜템피스투자자문(1998년), ㈜윔스(2000년), 이콜로지앤푸드(2005년) 등이 순차적으로 생겨났는데, 이들 법인 등기에는 모두 최씨 이름이 설립 당시부터 이사, 사내이사, 감사 등으로 기재돼 있다.
이 중 템피스투자자문의 경우 최씨는 설립 당시부터 3억원을 투자했고, 2010년 주주명부에 따르면 딸 두 명도 각각 1억원어치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이 회사는 추후 박 전 회장이 2012년 회생 결정을 받은 뒤 주식 투자로 재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다른 회사들 역시 박 전 회장이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당 법인들의 실질적 주인이 박 전 회장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과거의 '자산 은닉' 의혹을 한층 강화하는 정황도 존재한다. 취재진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1997년~1999년 대구에 있는 본인 명의의 토지와 부동산들을 동생 박모씨 명의로 이전했다가 채권단에게 적발돼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채권단의 승소로 해당 부동산 명의는 다시 박 전 회장에게 돌아갔고, 바로 가압류됐다.
은닉 자산으로 20여년간 호화생활 했나…법인들 차명 보유 의혹
앞서 CBS노컷뉴스는 연속 보도(관련 기사 : [단독]8500억 빚 탕감 후 100억대 주식투자…몰락한 재벌의 수상한 부활, [단독]'반지하 월세' 회장님, 8천억 탕감후 유엔빌리지로 이사)를 통해 박 전 회장이 2012년 회생을 통해 채무 약 8500억원을 탕감 받은 이후 100억대 주식 투자에 나선 사실을 근거로 '자산 은닉'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또 수천억 채무가 있는 상황에서 호화생활을 누려 온 정황도 보도했다.
이를 종합하면 박 전 회장은 20여년 전 그룹 몰락 당시부터 가족 명의로 자산을 은닉, 이를 토대로 호화생활을 누리다가 2012년 채무 약 8500억원을 탕감 받는 회생 결정까지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박 전 회장 측은 20년 전 본인과 동생 소유의 주식을 매각해 현금 약 200억원을 ㈜갑을과 갑을방적㈜에 무상으로 증여한 데다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본인 소유 부동산도 일부 증여하는 등 당시 본인 재산들은 채무 변제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박 전 회장 명의 재산은 전부 채권단에 의해 가압류될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으로 증여하지 않았어도 채권단에 넘어갈 공산이 컸다. 또 이들이 경매에 넘어가 채무 변제에 사용됐더라도 2012년 회생을 받을 당시 남아 있던 채무가 약 8547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라 제대로 변제가 됐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같은 해명이 '자산 은닉'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어 박 전 회장 측은 회생 이후 주식 투자와 관련해서는 "박 전 회장이 회생 이후 주식을 구입한 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검찰과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의 조사를 모두 받았고 해당 기관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를 입증할 자료 요청에 대해선 거절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박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지시, 금융기관을 속여 수천억 사기 대출(특경법상 사기) 등을 받은 혐의로 1~2심에서 실형 3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2004년 11월 형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