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사상에서 '만인 제사장직'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 중세 교회의 타락을 개혁하는 동력이 여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중세의 성직주의는 성직자와 성직자가 아닌 사람, 곧 평신도를 갈라놓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형제자매입니다. 성직이 신분의 차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성직자는 신앙 공동체에서 다른 기능으로 섬기는 것이지 특별한 신분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평신도'라는 단어는 사실 성서적으로 보면 정당성을 갖지 못합니다. 오늘 논평의 제목에서 평신도란 단어를 작은따옴표로 묶은 것이 이런 까닭입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와 차별은 종교적 특권층이 형성되면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타락 현상입니다.
중세의 성직주의는 사람 삶을 성스러운 영역과 세속적 일상으로 찢어 놓았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배의 거룩함이 일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예배는 위선입니다.
예배를 집례하는 성직자가 속된 욕망을 갖고 있으면 그 행위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반면 제화공이 사랑과 정성으로 구두를 짓는다면 그 행위는 거룩한 예배가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의 직무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일상의 거룩함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루터가 강조한 만인 제사장직은 150년 정도 후에 경건주의의 창시자 필립 야콥 스페너 목사의 삶과 사상에서 다시 솟구칩니다. 스페너는 '영적 제사장직'이란 표현으로 루터의 사상을 잇습니다. 교회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그리스도인 모두의 제사장 역할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스페너의 진단이었습니다.
'평신도를 깨운다'는 대표 저서와 제자 훈련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갱신에 헌신한 옥한흠 목사의 사역은 교회사의 이런 흐름을 잇는 것이었습니다. 전문 목회직과 더불어 평신도 사역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해지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혁되려면 교회의 사역은 목사나 장로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깨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참된 제자요, 사역자로 살아야 합니다. 평신도 사역이 넉넉하게 작동해야교회다움이 회복됩니다. 엔데믹으로 건너가는 시기에 한국 교회가 힘써야 할 부분입니다.
CBS 논평이었습니다.
[지형은 목사 / 성락성결교회, 한목협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