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서울 성동구 용답동의 한 주택에서 30대 여성과 초등학생 딸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답동 살인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피해자의 전 연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청 소속 김원배 범죄수사연구관은 최근 수사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단서를 찾아냈다. 사건 당시 피해자의 반려견이 도살됐다는 점이다.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사건은 반려동물과 사람을 함께 죽인 범죄 유형에 속한다"며 "왜 이 특징을 진작 분석하지 못했나 싶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연구관은 30여 년간의 경찰관 생활을 퇴직한 뒤에는 2006년부터 경찰청에서 범죄수사연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그는 미제 사건 해결에 힘을 보태고 싶어 S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9일 방송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반려견에 주목해 '용답동 살인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예정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람을 살해한 사건을 보면 유형이 다양해요. 치정, 보복, 가정 내부 갈등, 청부 살인, 스토커 살인까지…이 사건들을 비교했을 때 분명 얻어낼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겁니다."
김 연구관의 사건 분석 능력은 이전에도 빛을 발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범행을 비롯해 부녀자 실종 신고가 끊이지 않던 2007년에는 직접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괴 사건에 '앰버 경고'(즉시 공개 수배)를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103건의 유괴 사건을 직접 분석한 결과 유괴된 어린이 94.6%가 당일 살해당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앰버 경고를 적용한 결과 이듬해 유괴 살인 사건은 거의 근절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내 가장 뿌듯한 성과"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현역 경찰관이던 2005년에는 수사견을 직접 도입하기도 했다.
"지문은 없어져도 그 사람의 고유한 체취는 남습니다. 지금 경찰견의 주요 업무는 실종자를 수색하고 폭발물을 감지하는 것이지만 제대로 훈련하면 범인의 체취까지 식별하고 추적할 수 있어요. 일본에서는 개가 후각으로 범인을 특정한 판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수색견뿐 아니라 수사견을 양성해야 합니다."
실제 국내 1호 수사견 포순이는 2013년 인천에서 발생한 살인미수·특수강도강간 사건 수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시 포순이는 범인이 휘두른 골프채 손잡이에 묻어있는 냄새로 범인의 행선을 추적해냈다.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하루 평균 10~15개 사건을 분류하고 기록한다는 김 연구관은 "매일 발생하는 굵직한 강력 사건을 취합하고 분류해서 기록하는 게 범죄수사연구관의 업무"라며 "현장을 누빌 때와는 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퇴직하기 전에 자신이 직접 도입한 수사견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경찰로, 범죄수사연구관으로 40년이 훨씬 넘도록 범죄의 역사를 기록해왔어요. 저와 함께 현장을 누볐던 포순이와 포돌이는 이제 없지만, 뒤를 이을 수사견들을 보는 게 마지막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