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한승헌 "부끄럽지 말자" 입버릇…인권 지킨 '인간변호사'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청와대 제공

스스로를 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강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늘 서슬 퍼런 군부 독재에 맞섰다.

변호사이자 경기도청 감사관인 김희수(64) 감사관은 한승헌 변호사를 그런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 변호사는 김 감사관의 고등학교·대학교 선배이자, 검사를 거쳐 변호사 길을 걸은 인생의 등대 같은 존재다. 한 변호사는 김 감사관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다.

김 감사관은 "법조인뿐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도 롤모델 같은 존재"라며 "올곧고 정직하면서도 한없이 겸손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한승헌 변호사가 지난 20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그는 군부독재 시절 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다 탄압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민청학련과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 사건 등 100건이 넘는 시국 사건을 변론했다.

한 변호사는 '부끄럽지 말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김 감사관은 "변호사님이 항상 하셨던 말씀이 '자랑스럽게 살진 못하더라도 부끄럽게는 살지 말자'는 거였다"며 "그렇게 살고 있는지 늘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삶의 표어"라고 말했다.

'인권 변호사' 호칭 싫어했던 '인간 변호사'


한 변호사에게는 '1호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이 뒤따른다. 시국 사건에 앞장섰기 때문.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오히려 모독으로 여겼다고 한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가치라는 것이다.

김 감사관은 "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아주 싫어했다"며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인권을 지켜야 하고,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로 여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생을 인권운동에 바친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자신을 인권 변호사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모욕이자,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법조인을 둘러싼 각종 권력형 비리가 끊이질 않는 시대에, 한 변호사의 일생이 우리 사회에 법조인의 역할을 되묻고 있는 셈이다.

1993년 11월 24일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소견서' 발표시 모습. 김대중도서관 제공

"늘 유머를 품었던 분…불의에는 꿋꿋한 지조"

한 변호사는 시국 사건 등을 변호하며 늘 사선에 있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변호사님이랑 커피를 마시러 갔어요. 당시 변호사님이 시국 사건을 자주 맡다 보니까 한쪽에선 '빨갱이'라고 불렀거든요. 그런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김군아, 나보고 다들 빨갱이라고 하는데 난 아메리카노를 참 좋아하거든!' 당시 간첩이나 공산주의와 커피가 연결이 안 되잖아요."

김 감사관은 한 변호사와 함께 승강기에 탔던 기억도 떠올렸다. 평소 깡마른 체구였던 한 변호사가 만원 승강기에 올라타자 '정원 초과' 경고음이 울렸다. 두 사람은 자진해서 내린 뒤 다음 승강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 변호사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나도 무게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김 감사관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항상 위트가 있던 분"이라면서 "그러나 부정과 불의를 마주할 땐 꿋꿋한 지조로 버텼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회적 어른, 법조인들의 귀감"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서울 성모병원에 마련된 한 변호사의 빈소를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영정에 헌화한 뒤 한 변호사의 부인인 김송자 여사 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상심이 크시겠다"며 "사회적으로도 아주 큰 어른이셨고, 우리 후배 변호사들, 법조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를 아주 많이 아껴주셨는데 너무나 애통하다"면서 "제가 직접 와서 꼭 조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1975년 당시 한 변호사와 인연을 맺었다. 한 변호사가 반공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는데 마침 바로 옆방에 대학생이 시위를 하다 잡혀들어왔던 것. 한여름이었던 탓에 한 변호사가 교도관을 통해 '메리야스'를 전달했는데 그 대학생이 문 대통령이었다.

한 변호사는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1960년 법무부·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1965년에는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개업한 뒤 각종 시국 사건을 변론했다. 198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혐의를 인정하라는 강요와 함께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을 주도했고, 김대중 정부 때는 감사원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리인단에 소속됐다. 2018년에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하고 사법부의 탈권위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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