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가파른 경사에 '휘청', 작은 턱에도 '덜컹'…장애인 출근길 동행해보니 ②"여기선 못 내려요" "전 역에서 내리세요"…이동 제약 지하철역 전수 분석 ③[단독]'1역사 1동선' 확보됐다? 사각지대는 '환승' ④장애인 '이동권'…배우고 일할 수 있는 '첫걸음' ⑤'장애인 이동권' 지방이 서울보다 낫다?…'1역사 1동선' 격차도 (계속) |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에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끌고 또 다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는 이날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장애인권리 예산 등 관련 법 개정 등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으면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전장연이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는 곳은 서울 지역 지하철 등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간 이동권 확보를 위해 여러 대책을 추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취약하다는 게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CBS노컷뉴스는 서울 지하철역 전수 조사 등을 통해 서울 지역 장애인 이동권의 현 주소와 문제를 짚은 바 있다.
이를 넘어 CBS노컷뉴스는 전국 지하철역에 대한 분석에도 착수했다. 지하철이 갖춰진 대전·대구·부산·광주 등 4개 광역시를 찾아 면밀히 살펴본 결과, 서울 지역 지하철 장애인 이동권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1역사 1동선' 확보 역시 서울 보다 지방이 앞서간 상태다. 다만 지방 지하철의 경우에도 일부 이동권 '사각지대'는 포착됐다.
지하철 '장애인 이동권' 지방이 서울 훨씬 앞섰다, 왜?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광주(20개역)·대구(89개역)·부산(153개역)·대전(22개역) 광역시 지하철 현장을 전수조사 한 결과, 대구·부산·대전 지하철은 모든 역사에서 '1역사 1동선'을 충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의 경우 1개 역사(양동시장역)만 '1역사 1동선'을 충족하지 못했다. '1역사 1동선'은 교통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광주 지하철 양동시장역은 대합실에서 지상까지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태다.반면 서울 지하철은 1~8호선 275개역 중 21개역(7.7%)에서 '1역사 1동선'을 확보하지 못했다. 환승역 69개 중 50.7%(35개역)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를 한 동선으로 환승할 수 없다. 환승을 위해선 밖으로 나간 뒤 들어오거나 '울며 겨자먹기'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휠체어 리프트는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를 감안하면 지방 지하철 보다 인구 이동이 많고 밀집도가 훨씬 높은 서울이 지하철 장애인 이동권에 있어 훨씬 더 취약한 셈이다.
지방과 서울의 장애인 이동권 격차 원인은 무엇일까. 그 배경에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교통약자법은 지난 2001년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장애인 추락참사를 계기로 제정 움직임이 일었으며, 장애인 등 약자가 모든 교통수단에 있어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했다.
'교통약자법' 제정 시기 개통한 광주(2004년)와 대전(2006년)의 지하철은 엘리베이터 등 동선 확보를 위한 안전 시설이 구비됐다. 교통약법에 따르면 각 지자체와 정부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을 위해 5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해당 법에 따라 2007년엔 '제 1차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편의증진계획'이 수립됐다.
지자체들은 법 개정이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이동권 향상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대전교통공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은 1974년부터 지하철이 지어지기 시작해 엘리베이터 등 교통약자 편의시설이 구축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며 "2006년 대전 지하철 개통 당시 장애인복지법과 교통약자법 등에 영향을 받아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건설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지하철을 운행했던 대구(1997년)와 부산(1985년)의 경우엔, '교통약자법' 시행과 맞물려 추후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이동권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민제 집행위원장은 "대구시가 엘리베이터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내놓지 않았기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며 "2007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시작으로 추석엔 시청을 점거하는 등 엘리베이터 설치를 비롯해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 보급 등을 격렬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그해 연말 대구시의회에서 구체적인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조례가 통과됐다"고 덧붙였다. 대구시는 2013년 1호선 30개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완료했다.
2007년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따르면 당시 참여정부는 서울 지하철 54곳, 부산과 대구는 각각 63곳, 29곳에 교통 약자를 위한 동선이 제대로 확보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향후 5년 간 엘리베이터 설치에 중점을 둔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현재 부산과 대구는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반면, 서울은 여전히 21곳에 엘리베이터가 미설치된 상태다.
서울 지역 '출근길 휠체어 시위'가 사회적 이목을 끈 가운데, 인수위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하철 역사당 1개 이상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이용객이 많은 지하철 역사는 장애인을 위해 역사당 2개 동선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뒤늦게나마 대책을 밝혔다.
'1역사 1환승' 미비, 승강장과 열차 사이 넓은 간격 '사각지대'도
다만 서울 지하철 보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에 앞서 있는 지방 지하철의 경우에도 '사각지대'는 있었다.부산 지하철의 경우 11개 환승역 중 서면, 연산, 동래, 벡스코역 등 총 4개 역사에서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한 동선으로 환승하기 어려웠다.
특히 해당 역들은 유동 인구가 많은 부산 중심 지역에 몰려 있으며 환승을 위해선 수직형 리프트를 타거나 밖으로 나가야 하는 등의 이동권 제약 사례가 포착됐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수직형 리프트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역사는 서면역이며, 개찰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하는 역사는 벡스코역으로 파악됐다.
부산의 경우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10cm가 넘어 휠체어로 이동할 경우 틈에 바퀴가 끼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역들이 다수 확인됐다.
부산교통공사에 따르면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10cm 초과한 곳은 1호선 남포, 서면, 연산역 등 총 10곳이었다. 1호선 남포역의 경우 간격이 18.5cm나 벌어져 있었다. 간격이 정확히 10cm가 되는 역까지 따져볼 경우 총 31개 역으로 늘어났다.
광주 지하철 양동시장역의 경우 대합실과 지상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에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휠체어 리프트를 타야만 한다. 해당 휠체어 리프트는 이동할 때 탑승자가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하기에,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은 이용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