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금조 이야기' 김도영 작가 "전쟁 이야기하는 이유…"

김도영 작가. 국립극단 제공
지난달 30일부터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금조 이야기'는 1950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딸을 잃어버린 '금조'가 피난길에 만나는 사람과 동물 이야기를 풀어낸다.

금조의 험난한 여정에는 피난민 뿐만 아니라 역무원, 시인, 전쟁고아, 소년병 등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휘둘리는 사람부터 표범(들개), 말, 곰, 개구리 등 동물까지 30개의 캐릭터가 동행한다.

희곡을 쓴 작가는 김도영(35). 그의 이름 앞에는 '전쟁 이야기를 쓰는 젊은 여성 희곡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18년 '무순 6년'을 시작으로 '왕서개 이야기', '수정의 밤', '신신방' 등 2차 세계대전 특히 일제강점기 만주를 배경으로 한 연극을 계속 무대에 올려온 덕분이다. '왕서개 이야기'로는 2020년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5일 국립극단에서 김도영 작가를 만나 '김도영 이야기'를 들었다.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작가'를 통해 1년간 준비 끝에 연극 '금조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는데

"일반적인 지원사업은 희곡을 먼저 써놓고 그게 통과되면 공연하는 방식이에요. 반면 '창작공감: 작가'는 작가를 먼저 뽑고 작가가 원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줘요. 연출가 등과 협업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반면 협업하기 전에 작가의 시간이 넉넉해서 좋았죠. 워크숍은 한 달에 2번 정도 했어요. 작가 각자가 필요한 걸 먼저 제안하면 그것을 검토하고 수용해주는 과정이 좋았어요. 이를테면 '고정관념 교정연습'은 세 작가의 뜻을 반영해 여성학자 권김현영씨가 강의했어요. 아무래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역사극은 등장인물이 전형적인 경우가 많은데요. 고정관념을 답습하지 않는 방식의 글쓰기를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죠."

올해 국립극단 '창작공감: 작가'에 선정된 3명(김도영, 배해률, 신해연)의 작가는 지난 1년간 특강, 리서치, 워크숍, 자문, 두 차례 낭독회 등 체계적인 준비 과정을 거쳐 만든 연극을 지난 3월부터 순차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극 '금조 이야기' 중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금조 이야기'는 러닝타임이 4시간 20분에 달한다. 러닝타임을 길게 가져간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러닝타임이 5시간 30분이었는데 많이 덜어낸 거에요. 보통 지원사업은 예상 공연시간을 적는데 대체로 100분 내외(A4용지 50장 분량)죠. 지원사업에 응모하면서 저도 모르게 글을 A4용지 50장 분량에 맞춰서 쓰는 습관이 생겼어요. 제 글쓰기 지향점은 읽는 재미가 있는 문학적 희곡이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쓰는 족족 A4용지 120장을 넘겨요."

▷'금조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

"이 작품은 '딸을 잃어버린 엄마 이야기' 한 줄에서 시작했어요. 전작 '붉은 낙엽'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에 피난민을 엮었죠. 금조가 주인공이 아니라 금조가 피난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전쟁으로 목숨을 잃어도 개개인은 '죽은 몇 만 명'으로 한데 묶여 수치로만 기억되죠. 한국전쟁을 다룬 책을 읽어봐도 피난민은 피난민일 뿐 이들 개개인의 삶에 집중한 책을 저는 잘 못 봤어요. 그래서 피난민의 일상과 이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죠."

피난민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점이 있나

"객석에서 관객과 함께 공연을 보고 있으면 관객이 비슷한 장면에서 비슷한 관극 태도를 보일 때가 있어요. 인간이 변화되는 지점을 보고 놀라는 관객의 모습이 작가에겐 가장 힘이 되는 피드백이죠. 극중 동물을 많이 등장시킨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딸을 잃은 금조의 여정에 동행하는 어미 잃은 '들개' 혹은 들개가 된 표범 '아무르'는 금조가 자신의 인간성을 옮겨 놓은 존재에요. 전쟁을 경험하며 인간성이 말살되는 인간의 모습을 동물을 통해 표현한 거죠. 폭력 혹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현상이 극중 인물을 변화시킨 건 맞지만 선악 구도를 이분법적으로 가져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인물들에게 각자의 사연을 입히는 대신 장면마다 '폭력이 발생했고 그 사람이 변했다'까지만 보여주죠."

연극 '무순 6년'(2018년)을 시작으로 꾸준히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1년간 중일전쟁에 관한 책을 보면서 스스로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만 보더라도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건 알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잖아요. 사실 저는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과거에 일어난 국가 간 폭력(전쟁)은 개인 간 폭력과 달리 등장인물의 서사가 무궁무진하고 그 일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또 작가가 어떤 태도나 입장을 취하지 않아도 되니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같은 현재진행형 전쟁과도 다르죠."

김도영 작가. 국립극단 제공
요즘 관심사는 뭔가

"제가 쓴 작품 대부분이 2차 세계대전 특히 일제강점기 즈음 만주가 배경이에요. 그런데 한국인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에 정착했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중국이 동북공정하는 게 쉬웠겠구나' 생각도 했죠. 이젠 사명감이 생겼어요. 2차 세계대전(만주)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 쓸 거에요. 인류 역사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잠시라도 멈췄던 적이 있었나 싶어요. 외견상 무력 충돌이 없어도 모든 나라가 국방예산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는 상황은 진정한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희곡 쓸 때 루틴이 있나

"최대한 한 호흡으로 쓰려고 해요. 생각이 시시각각 바뀌니까 중간에 끊으면 처음부터 다시 쓰게 되더라고요. 머리 속에 이야기의 얼개가 잡히면 보통 오전 11시부터 밤 12시까지 써요. 보통 희곡 한 편 쓰는데 4~5일 정도 걸려요."

희곡 외 다른 장르로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도 있나

"장르간 이동에 거부감이나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희곡 쓰는 게 좋아요. 희곡이 시집보다 안 팔린다고 하는데 희곡이 많이 읽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희곡 한 편 작가료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렵거든요. 희곡으로 인세 받는 미래를 꿈꾸는 거죠."

김 작가는 22살에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25살에 대학로 공연장에서 단막극을 올리면서 연극쟁이가 됐지만 '연극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건 최근이다. "'왕서개 이야기'가 인정받고 난 후죠. 연극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저를 신인 작가로 알고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연극 한 편으로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건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즈음부터 '희곡 작가로서 승산이 있겠구나' 싶었죠."

인터뷰를 마친 후 김 작가는 기자에게 '금조 이야기' 희곡집을 내밀었다. 사인을 부탁하자 속표지에 '관심 갖고 저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극 쓰는 김도영'이라고 꾹꾹 눌러 썼다. '금조 이야기' 공연이 끝나면 그는 다시 대학로 소극장으로 돌아가 공연 올리고 습작에 몰두할 계획이다. "쉴 수 없습니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쓰는 사람' 김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연극 '금조 이야기' 중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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