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일 오전 7시. 이른 아침부터 경기도 수원시 지동 김영자(가명)씨의 매장으로 형사 2명이 찾아왔다. 형사들은 김씨에게 한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들이 찾던 여성은 이른바 '오원춘(우위안춘·52) 사건'의 피해자 A(당시 28세)씨. 경찰은 전날 밤 A씨로부터 신고를 받고도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탐문을 하던 중이었다.
오후가 되자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다. 경찰이 오원춘을 체포한 것. 오원춘은 양 팔이 뒤로 묶인 채 경찰차에 올랐다. 신고 접수 13시간 만이었다. A씨는 이미 숨진 뒤였다.
"사진만 봐도 참 예뻤어요. 그런데 그렇게 됐잖아요. 마음이 아파요." 지난 30일 수원 지동에서 만난 김씨는 아직도 A씨의 얼굴을 기억했다.
10년 전 오늘, 최악의 살인 사건으로 꼽히는 '오원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부실한 대응으로 사건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112 시스템 등 대대적인 개편도 했다. 오원춘은 현재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수감돼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신고접수·대응·수사…늦거나 틀리거나
2012년 4월 1일 오후 10시 50분 58초. 경기지방경찰청(현 경기남부경찰청) 112 신고센터 전화가 울렸다. 신고자는 A씨. 오원춘이 잠시 집 밖으로 나간 사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동초등학교와 못골놀이터 사이 집인데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지금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면서 재차 위치를 물었다. A씨가 정확한 장소를 설명하지 못하자 성폭행을 당하는 거냐고 묻거나,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오원춘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결국 A씨는 살해됐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들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경찰은 '주민들이 잠들었을 야간'이라는 이유로 가정집보다는 폐가나 공터 위주로 수사를 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형사인력을 투입시키기도 했다.
여기에 경찰이 A씨와의 통화 시간을 축소해 발표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초 경찰은 A씨와 1분 20초간 신고 통화를 했다고 밝혔지만, 추가로 6분 16초간 전화가 끊기지 않으며 총 7분 36초간 통화가 연결됐던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 은폐 의혹이었다.
오원춘의 잔혹한 범행 수법과 경찰의 부실 대응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 여파로 사건 발생 일주일만에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이 옷을 벗었다. 조 청장은 "감찰 조사에서 112신고센터의 오판과 허술한 대처, 부실 수색과 사건 축소 등 심각한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도 사퇴했다. 그만큼 경찰에겐 뼈아픈 사건이었다.
경찰의 10년…112상황실 격상하고, GPS 강제 작동도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쇄신에 나섰다. 특히 문제로 지목됐던 112 상황실의 신고자 위치 확인 시스템을 개편했다. 신고자가 긴급상황에 처했다고 판단될 경우, 휴대전화 GPS(위성 위치확인시스템) 기능이 꺼져 있더라도 버튼 하나만으로 GPS를 켤 수 있게 바꿨다. GPS 신호 범위는 반경 10m 안쪽으로 감지되기 때문에 위치 파악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긴급상황'을 의미하는 '코드 제로(0)'도 이 사건을 계기로 도입됐다. 이전까진 코드가 1·2·3 세 개뿐이어서 긴급상황 대처가 어려웠다. 경찰은 코드1보다 더 긴급을 의미하는 코드0를 도입하고 코드도 5개로 늘려 세분화했다. 사건을 판단하기보다는 발생한 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112 접수 요원이 신고자의 전화를 받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신고자에게 전화가 걸리는 '콜백' 시스템도 도입됐다.
손실보상제도도 개편했다. 경찰관이 범행이 의심되는 현장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다 뒷일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 수사 중 발생한 금전적 문제는 조직이 책임지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밖에도 생활안전과 소속으로 경정이 지휘하던 112센터를 경찰청장 직속으로 옮기고, 관리자도 총경으로 격상했다. 명칭도 112치안종합상황실로 변경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원춘 사건 발생 이후 112의 중요성이 논의되며 신고접수부터 대응까지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수원 지동은 재개발 중…"밤에 못 다녀" 불안도
오원춘이 살았던 집은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흰색 가림막으로 막혀 있다. 집 대문에는 '집중 순찰지역'이라고 인쇄됐을 찢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대문 안쪽에는 짝을 잃은 운동화 한 켤레와 버려진 가재도구가 쌓여있었다.
김영자 씨는 "3년 전부터 재개발로 주민들이 떠나면서 사람 자체가 사라졌다"며 "밤에 쓰레기를 버리기가 무서워 아들과 같이 나오는 집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줄어든 발길은 10년째 상인들을 옥죄고 있다. 수원 지동에서 20년 넘게 매장을 운영한 이지영(가명) 씨는 "오원춘 사건 이후로 손님이 뚝 끊기면서 10년 동안 너무 힘들다"며 "자녀가 결혼하는 대로 매장을 접고 시골로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내년에는 수원팔달경찰서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주민들은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사건 발생 이후 주민들은 치안 강화를 요구했고, 경찰과 수원시는 수원팔달서 신설을 추진했다. 100만명을 훌쩍 넘은 수원특례시의 치안인구 상황도 맞물렸다.
이씨는 "아직도 많은 주민과 상인들이 생활하는 동네이니 만큼 계속 새롭게 바뀌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