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을 위한 협상이 꼬였다. 실무 협상을 맡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와중에 '용산 이전' 문제까지 끼어들면서 협상이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양측 취재를 종합해 보면, 용산 이전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사' 문제에 대한 견해차가 깊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 행사를 두고 양측 대립이 이어지면서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사 문제는 문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고위직 총 4자리로 압축된다. 윤 당선인 측은 감사원 감사위원 2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 1명, 한국은행 총재까지 4자리 모두에 '사전 협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실무 협의를 거쳐 3자리에 대한 기본 합의는 이뤄졌지만 남은 감사위원 한 자리에 대해 윤 당선인 측이 막판에 '동의권' 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사실상 네 자리 모두를 당선인 측에서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한 명도 양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이같은 동의권 요구가 사실상 대통령의 인사권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대통령이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지고 인사를 내는 것인데, 당선인 측 사전 협의를 받으라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인사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협상 과정에서 윤 당선인 측에서 '회동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회동을 볼모로 삼으면서 양측 불신이 깊어지는 형국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청와대의 문은 열려있다", "와서 논의하자"며 공개적으로 윤 당선인에게 손짓한 상태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은 "바람직한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을 뿐 회동 자체에는 확답을 내지 않고 있다.
이처럼 협상이 공회전을 반복하자 문 대통령을 만날 의지가 과연 있느냐는 의구심도 청와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아직 협상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에서 윤 당선인의 최측근 인사가 '대선 불복' 프레임을 걸면서 발끈하는 등 감정적 대응을 하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아무런 성과 없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만날 이유가 없다"며 회동을 조건으로 내건 윤 당선인의 측근 멘트도 나왔다.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당선인의 만남이 불발된 것은 정치 역사에서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얼굴 한번도 보지 않고 대통령 이취임식을 하는 것은 국민 통합에 정면으로 반한다. 따라서 회동 불발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에 정치적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참모들의 치킨게임과 감정 싸움에 외부에서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사자인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나서서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야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한 고위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로에 대한 불신을 깔고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당선인과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며 "용산 이전 문제는 국가 중요시설 이전과 안보 문제로 따로 떼어놓고 보고, 인사 문제는 상호 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