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번 대에서 줄을 선 30대 김모씨는 "3시 조금 전부터 줄을 서서 7시 30분에 번호표를 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라며 "명품 시계는 일단 값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르는 경우가 많아 되팔아도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코로나19 확산과 영하를 밑도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대기시간이 기본 5~6시간에 이를 정도로 시계 등 명품 매장 개장시간을 기다리는 '오픈런'은 여전히 인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오픈런 열기로 인해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사람뿐 아니라 대신 줄을 서거나 되파려는 업자까지 나오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 방문한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입구에는 시계 매장인 '롤렉스'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이 매장은 오후 7시 30분에 40명 제한의 다음날 입장 번호표를 배부하는데, 이미 오후 3시부터 꽉 차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며느리에게 시계를 선물하려 줄을 섰다는 60대 유모씨는 "2시쯤 왔는데 33번을 받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근에 거주하는 유씨는 이미 몇 번 방문했으나 원하는 제품이 나오지 않아 구매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피'(일명 '프리미엄', 추가 금액)를 붙여서 사면 편한데, 제품 모델에 따라 수 백 만 원씩 붙는다"며 "나도 돈이 많았으면 이렇게 줄 서는 고생 안하고 피주고 사버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전에 다른 매장에 갔다가 오후에 줄을 섰다는 최모(34)씨는 "인기있는 제품들이 나오면 되팔려고 한다"며 "그래도 '업자'처럼 보이면 제품을 안보여주는 것 같아서 '결혼 예물로 쓰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이 통용되는 팁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쪽에서는 대규모 구매대행 알바를 쓰는 업자도 있는 것 같다고 소문이 돈다"고 덧붙였다.
명품 구매를 투자 전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IT업계 종사자인 김모(41)씨는 "지난 몇 년 동안 회사 인센티브 등으로 모은 돈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름 모르는 코인 같은 곳에 넣는 것보다, 인기 있는 모델의 명품은 확실한 투자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명품 오픈런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오픈런 알바'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오픈런 알바는 네이버카페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서 알바를 모집해 대신 줄을 서게 한 뒤 번호표를 발부할 때 자리를 바꾸는 식으로 운영된다. 알바 수당은 시간당 1만~1만3000원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알바로 줄을 서고 있던 A(36)씨는 "따로 직업은 없고 알바로 이 일을 하고 있다"며 "이 알바를 아예 정기적으로 하는 사람들보다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 잠깐 '투잡'하는 느낌으로 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들이 수없이 없는 공강 시간에 와서 하다가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교대하는 모습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역시 알바로 줄을 선 20대 초반의 B씨는 "시급은 1만 원에서 요즘은 택시비도 주는 곳도 나온다"며 "오픈카톡방에서 매칭시켜주기도 하고, (알바를) 자주 한 사람이면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은 날이 풀려서 괜찮은데, 지난주에는 너무 추워서 발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오픈런 알바'를 이용해봤다는 40대 김모씨는 "대기할 시간은 없는데 사고 깊은 물건이 있어서 고용해봤다"며 "대기번호를 받아준 대기자분을 만났는데 생각보다 어린 친구였고, 돈을 지불하지만 오랜 시간 추위에 떨고 있었다는 것이 좀 불편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오픈런 인기가 과열되면서 '새치기' 등으로 인한 갈등도 종종 벌어진다. 지난달 19일에는 대기줄에 4명이 끼어들기를 시도하다가 실랑이가 벌어져 경찰이 중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극단적 소비 형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단국대 김태기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MZ세대'의 투자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김태기 교수는 "부동산을 살 수 없는 MZ세대들에게는 중고 가격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명품들이 하나의 재산인 것이다"며 "SNS나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도 많이 발달돼 유통도 보다 쉬워졌다"고 말했다.
인천대 이영애 소비자학과 교수는"코로나19가 이어지면서 일종의 보상으로 소비를 하는 '보복 소비' 측면이 강하다"며 " SNS 이용률이 더욱 커지면서 이제 '무엇을 입냐, 무엇을 타냐, 무엇을 들고 다니냐'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