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로 점철됐다고 조사된 대장동 사업과정에서 이재명 성남시의 역할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 앞에서 검찰은 길을 잃은 모양새다. 실마리를 쥐고 있다고 지목된 인사들은 잇따라 숨지고, 남겨놨던 추가 수사 창구도 별다른 실익 없이 닫혀버렸다. 대선 국면과 맞물려 수사 결과를 거세게 요구받고 있는 검찰은 '계속 수사'라는 입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윗선 연결고리' 유한기 이어 김문기도 사망
전날(21일) 숨진 채 발견된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도공) 개발사업1처장은 대장동 개발 사업 주무 부서장으로서 유동규(기소) 전 성남도공 기획본부장의 측근이자, 성남시 관계자들과 해당 사업 관련 긴밀하게 접촉했다고 지목된 핵심 실무자다.
김 처장은 대장동 사업자 공모를 불과 8일 앞둔 2015년 2월5일 이 사업 주무를 맡게 됐는데, 직전 주무부서(2처)에서 부당 사업 방침에 대한 견제 의견이 나오자 유 전 본부장이 아예 측근에게 실무를 맡겨버린 것이라는 시각도 내부에 존재했다고 한다. 김 처장은 성남도공 입사 전부터 유 전 본부장과 알고 지낸 사이로, 2009년엔 한국리모델링협회 제도개선위 수석 간사로서 성남 지역 리모델링 세미나에 함께 참석한 적도 있다. 당시 변호사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도 이 행사에 자리했다. 김 처장은 성남시 인허가 관련 공무원들이 대장동 사업 관련 '실무 파트너'로 지목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5년 대장동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을 때 업무 관련 소통을 김 처장과 자주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남도공 대장동 실무자이자 윗선인 성남시와의 연결고리였던 김 처장을 검찰은 지난 10월부터 이달까지 네 차례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이 그를 피의자로 특정하지 않은 이유는 주무 부서장이긴 했지만 실질적인 업무 주도권은 남욱 변호사의 측근으로서 성남도공 전략사업팀 투자사업파트장으로 투입된 정민용 변호사에게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김 처장을 둘러싸고 '민간사업자 초과이익 환수조항 삭제 주도' 의혹 등도 제기되지만,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측과 사전결탁한 '유동규·정민용 성남도공 체제'에서 김 처장은 지시에 따른 실무자였을 뿐 결정권자는 아니었다고 본 것이다.
그가 돌연 사망하자 검찰 내부에서는 물론, 성남시 안팎에서도 당혹스러워 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김 처장 주변에선 "대장동 주요 피의자들의 진술이 주로 김 처장 자신을 포함한 실무선에게만 불리한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압박감이 컸던 것 같다"며 "그가 참고인 조사과정에서도 변호사를 구했던 건 기소를 대비한 행보 아니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윗선 책임규명 전망이 불투명하다보니 아랫선의 진술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처장 관련 혐의점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며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성남시 배임 공모의혹 수사 전략적 창구' 정민용마저 기소
대장동 의혹 해결의 실마리를 쥔 인물의 사망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5년 2월 상사인 황무성 성남도공 사장에게 "시장님(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명"임을 언급하며 사퇴를 압박, '유동규 사장 직무대리 체제'로의 전환에 기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유한기 전 성남도공 개발사업본부장도 지난 10일 숨졌다.
윗선 수사의 주요 연결고리가 연달아 끊긴 가운데, 검찰은 관련 의혹 해소를 위한 또 다른 창구로 삼아왔던 정민용 변호사마저 전날 수사를 마무리하고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팀은 지난달 22일까지 대장동 주요 민관(民官) 사업 주체 4인방(유동규·김만배·남욱·정영학)을 '부당 유착으로 성남도공에 최소 651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기면서도 정 변호사의 기소 시점은 뒤로 미뤄왔다. 정 변호사를 성남시 관여 의혹 수사의 발판으로 남겨둔 것이라는 분석이 검찰 내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수사팀은 약 1달 동안 이 같은 전략적 판단에 따른 실익은 사실상 거두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변호사의 공소장에도 4인방 수사 내용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내용들이 담겼다고 한다.
법조계에서 "윗선 수사는 얻은 것 없이 마무리 되는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달 초 주요 피의자 구속 국면에서 성남시의 공모 여부 조사에 소홀했던 수사팀이 자초한 상황이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대장동 사업 당시 시(市) 의사 결정 구조의 '실세'라고 지목돼 온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 소환 조사 일정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지난주 초 정 전 실장을 소환 조사하는 방안이 검토됐던 것으로 파악됐지만, 유한기 전 본부장의 사망 등 변수로 기존 계획이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조만간 그를 부르더라도 수사 진행경과상 "보여주기식"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